Georgia O’Keeffe 1887-1986
추상 환상주의, 미국 모더니즘의 어머니로 불리는 조지아 오키프는 당시 다른 미국 화가들과 달리 유럽 미술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작품 활동을 펼친 대표적인 여류 화가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가장 큰 명성을 얻었던 오키프는 아일랜드계 헝가리 몰락 귀족 출신으로, 위스콘신 센프레리 농장을 운영하던 가정의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10대 초반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녀는 일찌감치 화가의 길을 선택했으며,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 속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스쿨에서 수학했다. 유년 시절 광활한 농장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 경험은 그녀의 작품 전반에 자연의 향기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다.
오키프는 꽃, 사막의 풍경, 짐승의 유골 등을 강렬한 색채와 형태로 표현하며,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추상적 이미지를 구축해 ‘여왕벌’이라는 별칭과 함께 여류 화가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현대미술에서 꽃은 감상적이고 상투적인 여성성을 상징하는 소재로 여겨졌으며,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예쁘다’는 평가는 종종 비아냥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조지아 오키프는 남성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예쁨’을 표현하며, 여류 화가의 작품을 평가절하하던 편견을 뒤집었다. 그녀의 꽃 그림은 남성들의 시기와 두려움을 자극했고, 그 독자적인 양식으로 미술사에서 남성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최초의 여류 화가로 평가받는다.
오키프의 꽃 작품을 두고 일부에서는 선정적이거나 에로틱하다고 느끼며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예술이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때때로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없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으며,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심지어 내가 원하는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학교의 교사들과 화가들로부터 배운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그리지 못하게 했다. 결국 나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진짜 중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바로 나의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추상적인 목탄 드로잉을 친구에게 보냈고, 그 작품이 세계적인 사진작가이자 비평가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게 전달되면서부터였다. 그녀의 작품에 매료된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드로잉 10점을 전시했고, 좋은 반응을 얻자 1년 뒤 개인전을 열어주었다.
23살의 나이 차이가 있던 이혼남 스티글리츠와 오키프는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가세가 기울어 가족의 지원을 받지 못하던 오키프에게 그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다. 그러나 결혼 3년 후부터 스티글리츠의 외도가 시작되었고, 이후 오키프보다 18살이나 어린 여성과의 관계까지 이어지며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비록 개인적인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예술적 동반자로서 오키프의 작품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운 인물로 스티글리츠를 빼놓고 그녀의 삶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떠난 뉴멕시코 산타페 여행에서 오키프는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의 풍경에 깊이 매료되었다. 스티글리츠가 3년 후 사망하자, 그녀는 뉴멕시코로 이주해 사막에서 발견한 짐승의 두개골과 뼈, 꽃과 식물의 기관, 조개껍데기, 산 등을 내면화한 뒤 이를 확대해 캔버스에 옮겼다. 그녀의 그림은 자연에 대한 깊은 탐미를 담고 있으며, 생물 형태에 추상적 아름다움을 부여해 신비롭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뉴멕시코에서 흙으로 지은 소박한 집에 살며 수도승에 가까운 절제된 삶을 선택한 오키프는 오직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녀는 70세가 넘어 세계일주를 했고, 85세에는 58살 연하인 27세 청년 해밀턴과 연인 관계가 되었다. 해밀턴은 13년 동안 오키프 곁을 지키며 창작 활동과 일상 전반을 돕는 비서 역할을 했다.
자녀가 없었던 오키프는 사후 약 856억 원에 달하는 유산을 가족에게 남겼고, 해밀턴은 오키프 재단에서 유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키프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해밀턴은 그녀를 찾아온 한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된다. 2016년, 70세가 된 해밀턴은 “오키프를 둘러싼 많은 가십들이 그녀의 업적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위대한 여류 화가’가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길 원했다”고 회고했다.
98세의 일기로 산타페에서 생을 마감한 오키프는 유언에 따라 그녀의 유해를 뉴멕시코 사막에 뿌리게 했다. 평생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하고 존경받기에 충분하다. 오키프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면, 투명한 태양 아래 코발트빛 하늘과 맞닿아 있는 뉴멕시코 산타페의 조지아 오키프 박물관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홍성은 작가
시카고 한인 미술협회 회장
미술 심리치료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