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미국의 시민권자 영주권자가 되기를 원한다. 특히 미국 시민이 되면 세금을
내야 하는 의무도 있지만 미국시민으로서 의 안전을 정부와 국가로부터 보장 받기도 한다. 세계 제 1등
강대국 미국의 시민권자가 미국의 적성국에 정치적 문제나 여러가지 문제로 억류되어 있을때 심지어는
전직 대통령들이 직접 그곳을 방문하여 구해오기도 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9년
정탐혐의로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계 여기자 2명의 석방 교섭 등을 위해 평양을 전격 방문하기도 하였다.
지난 97년 탈북해서 중국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에 잠시 생활한 뒤 2018년 미국에 정착한 케빈 박씨는 지난
추석기간이 악몽같이 생각된다. 잠시 추석기간에 가까운 탈북민 친척을 만나러 한국행 비행기를 탈때만
해도 그리운 얼굴을 만나고 단풍이 물든 아름다운 한국 산천을 볼수 있다는 부푼꿈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잠시간의 여행이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망명을 통하여
미국에 온 그는 아직 정식으로 미국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 입국이 거부되
버린것이다. 케빈 박씨는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미국에 곧 들어오기를 희망하고 미국이 자신에게
너무나 잘해준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했다.
박씨는 북한에서 상당히 고위급 사무직을 했었다. 그리고 박씨는 최고의 가문으로서 남부러울것이
없었지만 여러가지 사정과 이유로 탈북을 해야만 했었다. 그런 이유때문에 중국이나 한국에 잠시
있었을때도 항상 신변의 불안을 크게 느꼈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는 최고의 정보와 보호가 보장되어
있는 미국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평안함을 얻었다. 미국정부의 보호와 마음의 편안함 속에서
케빈씨는 비록 북한에서는 많이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집수리 기술을 배우면서 미국생활에 점차 정착을
했다. 처음에는 손에 익지 일이었지만 조금씩 기술이 늘고 임금이 올라가고, 같이 일을 배우주는 탈북민
사장과도 호흡 잘 맞으면서 고급 자동차도 사고 좋은집에도 살면서 미국의 꿈을 이뤄갈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가면서 항상 그의 최고의 관심사인 북한인권문제와 평화적 통일에 관한 일들을
틈틈히 하면서 미국내에서 여러 탈북민들 그리고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과도 연결을 하면서 여러주를
다니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었다. 비록 최고위층이었지만 북한에서 국가에서 지정해준 직업과 제한된
월급으로 항상 쪼달리는 생활과 변변한 음식도 먹지 못했지만 미국에서는 일한만큼 돈을 받았고 특히
건축업 계통의 일들은 매우 고수입이라도 항상 소고기가 입에서 떨어질날이 없었다.
박씨는 미국내 탈북민들과도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항상 했었다. 미국에서 경제적 삶에 빠져서 고향
북한에 대한 평화통일과 인권문제를 조금은 소홀히 하는 이들에게도 여러가지로 그 중요성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망명으로 미국에 들어와서 미국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잠시간의 한국으로의 여행이 미국
재입국의 걸림돌이 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미국내에서도 같이 건축업을 하는 동료 탈북민도 그의
사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케빈 박씨의 귀환을 조속히 바라고 있다. 또한 미국내에 여러가지 북한인권
사업과 평화통일 프로젝트를 위하여 조혹히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는 미국에 다시 재입국이
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탈북민들을 돕고 미국내 탈북민들과 더욱 협력하여서 북한관련 여러가지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케빈 박씨는 미국 대통령에게 초청된 적도 있다. 최상위 북한 탈북민들중 하나로서 미국 대통령과
정부에게 평화통일과 북한인권에 관한 자문을 해준것이다. 케빈씨는 미국에 재입국을 하게 되어 대통령과
면담을 할 기회가 생기면 좀더 밀도 있게 북한인권과 평화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한미자유연맹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