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태양을 품은 도전, 이경수 박사의 핵융합 혁신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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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박사(좌), 이가희 특파원(우)이 인애이블퓨전 기업연구소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나서야, 미래 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경수박사가 (주) 인애이블퓨전 기업연구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년 12월, 한국 최초의 핵융합 에너지 스타트업이 문을 열었다. 국제 핵융합 공동 프로젝트 ITER의 기술 총괄 부총장을 지낸 이경수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34년간 핵융합 연구에 매진해 온 그는 ‘인공 태양’을 통해 에너지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도전에 나섰다.

2월 17일, 대전 유성구 엑스포로 사이언스센타 14층에 위치한 ㈜인애이블퓨전 기업연구소를 찾았다. 한국 핵융합 연구의 산 증인 이경수 박사를 만나 창업의 배경, 스타트업의 성공 전략, 그리고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비전을 들어봤다.

한국 첫 핵융합 스타트업, 판교와 대전에서 날개를 펴다

한국 핵융합 스타트업의 역사는 2023년 12월, 인애이블퓨전의 법인 설립으로 시작됐다.

“법인이 있어야 투자도 받을 수 있기에 동료들과 함께 자비를 들여 시작했습니다.”

이 박사는 창업 당시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이듬해 4월, 대전 신세계백화점 옆 사이언스센타에 연구소를 열며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본사는 AI와 소프트웨어 인재가 몰려 있는 판교에 자리 잡았다.

“저에게 대전은 30년 넘게 연구해 온 익숙한 장소고, 판교는 첨단 기술의 중심지입니다. 두 거점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핵융합은 태양의 에너지 생성 원리를 지상에 구현하는 기술로, 기후 위기와 에너지 고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궁극의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하지만 초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제어하고 경제성 있게 상용화하는 일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이 박사는 스타트업 성공의 열쇠로 기술력뿐 아니라 ‘통찰력’을 꼽았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세상을 읽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기술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죠. 세계적 흐름을 이해하고 변화의 방향을 읽어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자금 관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임금 지급, 세금 납부, 운영비 관리 등 자금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단기간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합니다.”

한국 핵융합 스타트업 생태계, 이제 막 첫발을 떼다

세계는 이미 핵융합 에너지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Helion Energy, Commonwealth Fusion Systems, 영국의 Tokamak Energy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저희가 한국에서 첫 번째로 핵융합 스타트업을 시작했습니다. 핵융합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수라 국내 투자자들이 다소 소극적이었죠.”

이 박사는 미국 듀크대 김정삼 교수가 설립한 IonQ를 예로 들었다.
“IonQ는 양자 컴퓨팅이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시기에 창업했지만, 결국 나스닥에 상장하며 성공을 거뒀습니다. 한국도 핵융합 분야에서 그런 도전 정신이 필요합니다.”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창업 이후 핵융합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올해 안에 3개 정도의 스타트업이 새로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첫발을 뗀 만큼, 정부와 산업계의 장기적인 지원이 절실합니다.”

연구에서 상용화로, 50년 계획의 전환점

이 박사가 핵융합 상용화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1991년이었다.

“에너지 자원이 없는 한국이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50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선언을 통해 국가적 핵융합 에너지 계획을 공식화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KSTAR(한국형 핵융합 연구 장치)를 보유한 핵융합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연구 성과와 상용화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핵융합 발전소가 경제성을 가지려면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현대차가 그랜저를 수십만 대 생산해 단가를 낮추듯, 핵융합 플랜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는 관련 민간 산업이 미비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50여 개의 스타트업이 129억 달러(약 17조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상용화 경쟁에 뛰어든 상황. 이 박사는 한국의 제조업 기반과 뛰어난 ICT 기술력을 결합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AI와 ICT 기술, 핵융합 상용화의 열쇠

핵융합 에너지는 태양의 에너지 생성 원리를 지상에 구현하는 기술로, 플라즈마를 1억 도 이상의 초고온으로 가열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원리에 기반한다. 그러나 이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핵융합 반응을 전력 생산으로 연결하는 과정은 기술적으로 까다롭고 복잡하다.

“AI와 ICT 없이는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가 불가능합니다. 초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제어하고, 발전소의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려면 첨단 기술의 융합이 필수적입니다.“

이경수 박사는 핵융합 플랜트의 성공적인 상용화를 위해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공지능 기술은 플라즈마의 미세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이를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통제 알고리즘을 제공한다. 플라즈마는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인애이블퓨전은 이러한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두환 박사(전 KT· 포스코 사장)와 공동 창업에 나섰다. 최 박사는 한국의 AI 및 ICT 기술 발전을 선도해 온 인물로, 현재 핵융합 플랜트 운영에 필수적인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최 박사와 함께 한국이 보유한 AI·ICT 기술을 핵융합 에너지에 접목해, 플라즈마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발전소의 안정성을 극대화할 계획입니다. 이제는 과학적 발견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에너지 생산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현실의 플라즈마 반응로를 가상 환경에 동일하게 구현해, 다양한 변수와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플라즈마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박사는 AI와 ICT 기술이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의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한국의 디지털 기술 경쟁력이 글로벌 핵융합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AI 및 ICT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스마트 팩토리, 5G 통신, 반도체 등 최첨단 기술을 발전시켜 온 경험이 핵융합 플랜트 상용화에도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기술이 충분히 준비된 만큼, 이제는 이를 결합해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그는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핵융합은 연료를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사용합니다. 전 세계 바닷물 속에는 사실상 무한한 양의 핵융합 연료가 존재합니다. 또 핵융합 발전은 화석연료 발전과 달리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이기에,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최고의 선택지입니다.”

인애이블퓨전은 2045년까지 핵융합 발전을 통해 생산한 전력을 국가 전력망(그리드)에 연결해, 상업용 전력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 세계 핵융합 연구소들이 2040년 전후로 ‘핵융합의 그리드 연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이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겠다는 전략이다.

“우리의 목표는 핵융합 발전소를 단순히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이 핵융합 에너지의 글로벌 선도국으로 자리 잡는 것입니다. 2045년에는 우리가 만든 핵융합 전력을 그리드에 연결해 대한민국이 기후 위기 대응의 선도국이 되도록 기여할 것입니다.”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의 최종 목표는 한국의 에너지 독립이다.

“한국은 에너지 자원이 전혀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핵융합 에너지 기술을 통해 에너지 독립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는 석탄과 석유를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열고 싶습니다.“

이 박사는 나아가 핵융합 플랜트의 수출 시장도 염두에 두고 있다.

“미래의 에너지 시장은 핵융합이 주도할 것입니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핵융합 플랜트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강국으로의 도약을 향한 그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

이경수박사(좌), 이가희 특파원(우)이 인애이블퓨전 기업연구소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젊은 연구자들에게 보내는 도전의 메시지

이 박사는 미래 핵융합 산업을 이끌어 갈 젊은 연구자들에게도 따뜻한 조언을 남겼다.

“권유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저도 창업하지 않았겠죠. 도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세계 흐름을 이해하고 변곡점을 읽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계도 짚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만 있어도 대기업이 과감히 인수에 나섭니다. 하지만 한국은 M&A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스타트업의 성장이 쉽지 않아요.”

그러면서 인재 확보를 위한 세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인구 감소 대응을 해야 합니다. 연구 인력이 줄어드는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 연구직 대우 개선이 중요합니다. 연구자들에게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근무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셋째, 매력적인 연구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핵융합 연구원이면 멋지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가희 시카고 한국일보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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