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준비하는 법 이야기] 판례로 보는 상표법 ‘빨간 구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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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유명 명품 브랜드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구두의 윗부분부터 밑창까지 단색으로 된 하이힐을 출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이하 루부탱)은 입생로랑의 빨간색 단색 구두가 자신들이 미국 특허청(USPTO)에 등록한 상표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유는 바로 ‘빨간색 밑창’ 때문이었습니다.
루부탱이 등록한 상표는 밑창이 빨간색으로 된 하이힐이었는데, 입생로랑의 하이힐은 구두의 윗부분부터 밑창까지 전체가 단색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빨간색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구두 밑창의 ‘색상’도 상표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미국 상표법에는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트레이드 드레스란 제품이나 서비스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의미하며, 단순한 로고나 명칭을 넘어 포장, 디자인, 색상 배치 등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요소를 포함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코카콜라 병이 있는데, 병의 형상만 보고도 해당 제품이 코카콜라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부탱 구두의 빨간색 밑창은 트레이드 드레스로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루부탱 사건의 항소심(2심)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루부탱의 트레이드 드레스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2심은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모든 경우에 보호되는 것은 아니며, 구두의 빨간색 밑창이 구두 윗부분의 색상과 대조를 이루는 경우에만 보호된다고 판시함으로써 보호 범위를 제한했습니다.

2심 법원이 루부탱 구두의 빨간색 밑창을 상표로 인정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근거는 바로 ‘식별력(distinctiveness)’입니다. 상표나 트레이드 드레스가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그것을 보고 “아, 이건 루부탱 제품이네!”라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식별력은 ‘내재적 식별력(inherent distinctiveness)’과 ‘획득된 식별력(acquired distinctiveness)’으로 나뉘며, 제품의 디자인이나 형태는 원칙적으로 내재적 식별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획득된 식별력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루부탱의 빨간 밑창 하이힐을 본 소비자가 루부탱이라는 브랜드를 모른다면, 그것이 루부탱 제품인지 알 수 없습니다. 빨간색 밑창이 루부탱을 상징하게 된 것은 광고 등 외부 요인을 통해 소비자가 학습한 결과입니다.
이에 따라 2심 법원은 루부탱 하이힐의 빨간색 밑창이 획득된 식별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검토했습니다.
획득된 식별력의 존재 여부는 광고 지출, 언론 보도, 판매 실적 등 여러 요소를 통해 판단됩니다. 법원은 루부탱이 광고, 언론 보도, 실제 판매 성과를 통해 충분한 식별력을 획득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루부탱이 식별력을 인정받았다면 입생로랑의 빨간색 단색 구두는 상표 침해에 해당할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항소심 법원은 루부탱의 빨간 밑창이 구두 윗부분과 명확한 색상 대비를 이룰 때에만 식별력이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입생로랑의 구두는 윗부분부터 밑창까지 모두 같은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어 색상 대비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입생로랑의 구두가 루부탱의 상표를 사용했다고 볼 수 없으며, 소비자에게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유사하지도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루부탱 사례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등록된 상표라 하더라도, 실제 법적 보호의 범위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표 침해를 주장할 때에는 단순히 등록 여부뿐 아니라, 판례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법무법인 미래 김성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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