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으로 먹는 가공식품이 포장재나 가공기계에서 유래한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로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에 의해 경고되고 있다. 최근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된 연구는 이러한 식품 접촉 화학물질(Food Contact Chemicals, FCC)이 내분비계 교란, 생식 건강 저하, 암 발병 위험 증가 등 만성질환과 직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FCC 오염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보이지 않는 전이 현상’을 꼽았다. FCC는 식품의 저장, 운반, 가공, 조리 등의 전 과정을 거치며 눈에 띄지 않게 식품으로 스며든다.
식품 운반 과정에서는 저장 용기나 파이프라인에 쓰인 코팅 물질에서 화학물질이 누출될 수 있으며, 가공 시에는 고온의 기계나 벨트 시스템에서 유해 물질이 이탈된다. 특히 플라스틱 포장재와 고온 조리는 FCC 전이를 가속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연구에 따르면, 비스페놀 A 디글리시딜 에터(BADGE)는 금속 캔 코팅제에서 전이되며, 프탈레이트(Phthalates)는 유제품 가공용 PVC 튜브에서 우유로 이동한다. 일부 세척제 성분 역시 잔류물로 남아 식품에 스며들 수 있다.
브라이언 콱 리 식품과학자는 “패스트푸드는 다양한 1회용 포장재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오염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FCC가 일으키는 건강 문제는 단순한 자극이 아닌, 생명을 위협할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환경 전문 변호사 비닛 두베이는 “대체 물질이 존재하긴 하지만, 비용·성능·보존기간 측면에서 업계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조사에 따르면 가장 높은 오염 가능성을 가진 것은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이다. 냉동식, 에너지 음료, 가공육류(너겟 등), 시리얼, 과자, 소스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스탬퍼드 헬스 여성센터의 미아 카잔지안 박사는 “이들 식품은 생산·포장·조리 등 다단계에서 화학물질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소비자들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FCC 노출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식단 전환: 초가공식품 대신 신선한 식재료 위주의 식사 구성
-포장 선택: 플라스틱 대신 유리, 스테인리스 소재 제품 선택
-보관·조리 방식 변경: 플라스틱 용기에 직접 가열 금지, 조리 전 유리나 도자기로 옮기기
-주방용품 교체: 플라스틱 도마와 조리도구 대신 목재·금속·유리 제품 사용
카잔지안 박사는 “이제는 식품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때”라며 “지금 당장 시행 가능한 조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제품 내 화학물질 탐지를 위한 고도화된 테스트 도입, 안전한 대체재에 대한 업계의 투자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논문을 주도한 제인 문크 박사는 “이제는 인간 건강과 지구 환경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적 식품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22년, 미 식품의약청(FDA)은 식품 접촉용 프탈레이트 23종의 사용을 전면 철회했으며, EPA는 일부 프탈레이트의 신규 사용 시 사전 통보를 의무화하는 등 규제에 나서고 있다.
식품과학자 콱 리는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지금 벌어지는 수많은 건강 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이해할 수 있다”며 “보이지 않는 위험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고 경고했다.
<심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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