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은의 명화 여행]빛을 사랑한 인상파의 개척자 클라우드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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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해돋이’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리다

클라우드 모네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클라우드 모네 (Claude Monet, 사진)는 인상주의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 <인상: 해돋이>로 인해 인상주의라는 말이 생겨났다. ‘빛은 곧 색채다’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며,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탐색했다.

바다를 좋아해서 물을 많이 그렸으며, 말년에는 자신의 정원만 주로 그렸다.
세잔(Paul Cezanne)은 빛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네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모네는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모네는 1867년 그의 모델이며 애인이었던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와 그의 첫 아들 장(Jean)을 낳았다. 1869년 르누아르와 함께 파리에서 가까운 센 강변의 인기 있는 해수욕장 라 그르니에르에서 함께 작업했다.
모네는 1870년 카미유와 결혼했으며, 이어 발발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으로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는 런던에서 조지프 말로드(Joseph Mallord),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등의 영국 풍경화파의 작품들을 접했다. 이것은 명쾌한 색채 표현이란 점에서 커다란 기술적 향상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모네는 1867년 파리에서 백화점을 운영하던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인 에르네스트 오셰데(Ernest Hoschede)와 그의 아내 알리스(Alice Hoschede)를 만나 그들 부부의 집을 장식할 작품을 의뢰받았다. 1878년 후원자인 오셰데가 경기 불황으로 은행 파산 선고를 받고 벨기에로 사라져 버렸다. 남편의 파산으로 생활이 어려워져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알리스와 여섯 자녀를 모네는 기꺼이 거두어 베퇴유의 자기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한때 경제적 도움을 주었던 후원자의 은혜를 잊지 않고 불행해진 그들 가족을 돌보기로 한 것이다. 모네의 따뜻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듬해 모네의 아내 카미유가 사망했고, 그 후 알리스와 모네는 연인이 되었다. 1883년 모네는 노르망디 지방의 지베르니로 이사해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는데, 두 사람은 1892년 에르네스트가 사망하자 결혼했다.
두 집안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모네의 장남 ‘장’과 오셰데와 알리스의 딸 ‘블랑쉬’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모네는 1890년 이후부터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는 연작을 많이 제작했다.
<수련> 연작은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추모하며 그린 생애 마지막 연작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주적 시각을 보여준 걸작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모네의 작품들 중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다.
모네는 그 고된 작업에 의한 눈의 혹사로 백내장을 앓게 되며 거의 시력을 잃게 되지만, 그림 그리기는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26년 86세를 일기로 지베르니에서 생을 마감했다.

홍성은 작가
시카고 한인 미술협회 회장
미술 심리치료 전문가

*’홍성은의 명화 여행’은 격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