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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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은 모두 기억한다”

혈관은 분노의 순간을 잊지 않는다. 2024년 5월 미국심장협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Heart Association)에 발표된 최신 연구는 분노가 심장 건강에 미치는 치명적 영향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연구진은 건강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분노, 불안, 슬픔, 중립(감정 없는 상태) 네 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분노, 불안, 슬픔 그룹 참가자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거나 관련 문구를 읽으며 해당 감정을 유도했고, 중립 그룹은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세며 감정 없는 상태를 유지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 8분간 분노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혈관 내벽(내피세포)의 이완 능력이 최대 40분간 현저히 저하됐다. 반면 불안, 슬픔, 중립 그룹에선 혈관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반복적인 분노 폭발이 결국 혈관 기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초래해 심장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내피세포 기능 이상은 동맥경화의 초기 단계임이 밝혀졌다. 동맥경화는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해지는 질환으로, 심장마비나 뇌졸중 위험을 크게 높인다.

‘분노(anger)’라는 단어는 고대 노르드어 ‘angr’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슬픔’ 또는 ‘고통’을 의미한다. 분노의 극단적 표현인 ‘격노(열받아)’는 ‘무모함’ 또는 ‘광기’를 뜻한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분노를 “이성을 마비시키는 광기”로 정의했다. 현대 뇌과학도 이를 뒷받침한다. 분노가 폭발하면 뇌의 경보 시스템인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은 급격히 저하된다. 동시에 뇌의 혈류가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과 관련된 부위에서 멀어지면서 판단력은 흐려지고 위험 감수 성향이 높아진다.

또한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부정적 경험을 계속 곱씹으며 공격성과 보복 심리를 강화하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의 언어적 분노를 경험한 아이들은 뇌의 신경회로가 물리적 학대나 성적 학대와 유사한 수준으로 손상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의학에서는 분노의 해악을 다르게 해석한다. 한의학에 따르면, 사람의 감정은 신체의 오장육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 흐름을 ‘기’가 조율한다. 이 중 ‘분노’는 간을 가장 먼저 공격한다.

캐나다 한의학 전문가 조나단 리우에 따르면, 억눌린 분노는 ‘간기 울결’을 일으키며, 이것이 심화되면 ‘간화’로 번진다. 간화가 올라오면 고혈압, 두통, 어지럼증, 안구 충혈 등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 중풍이나 편두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비장, 위, 담낭 역시 영향을 받는다. 담낭은 용기와 판단력을 주관하며 간과 한 쌍을 이룬다. 둘 사이의 조화가 깨지면 소화 장애, 통증, 만성적인 분노와 원망이 뒤따른다.

오행 이론에 따르면 분노는 ‘목(木)’에 해당한다. 목은 성장과 변화를 상징하지만, 지나친 경직은 결국 바람에 꺾이는 나무처럼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서머렐 박사는 분노를 위협, 도발, 목표 차단에 대한 반응으로 정의한다. 2020년, 그의 연구팀은 겸손이 분노와 공격성을 어떻게 줄이는지를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참가자들은 먼저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 과거 경험을 떠올리고 글로 정리했다. 이후 운전 중 겪을 수 있는 분노 유발 상황(끼어들기, 느린 주차, 정체 유발 등)을 묘사한 글을 읽었다. 그 결과, 겸손을 유도한 그룹은 중립 그룹에 비해 분노와 공격성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감사와 경외감 같은 긍정적 감정이 겸손을 증진하고, 이는 분노를 누그러뜨린다는 선행 연구 결과와도 일치했다.

다만 서머렐 박사는 분노를 무조건 억누르는 것은 장기적으로 수동적 공격성이나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트레스 해소를 빙자한 폭력적 분노 표출(샌드백 치기) 역시 오히려 뇌의 분노 회로를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머렐은 인지 재구성을 추천했다. 이는 분노 유발 상황을 제3자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무례함을 개인적 공격이 아닌 그 사람의 개인적 어려움으로 이해하는 식이다.

이 밖에도 태극권, 기공, 요가, 호흡법, 마음챙김 명상 등은 분노를 비롯한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고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한의사 리우 박사는 “분노 없는 삶이 최고의 건강법”이라며, 자신을 돌보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생활을 권장했다.

<심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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