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달러의 세계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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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악시오스>

월가의 일부 금융전문가들은 최근 미국 달러에 대한 세계 투자자들의 신뢰가 수년 만에 크게 약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달러 의존 투자’ 시대의 끝자락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미국은 가장 안전하고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투자처로 꼽혔지만, 이제는 그에 대한 헤지(Hedge)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의 투자 전략 책임자 제이슨 토머스는 “이제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위기가 닥치면 무조건 달러나 미 국채를 사들이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악시오스에 전했다.

바클레이스의 환율 전략가 테모스 피오타키스도 “4월 이후 투자자들이 달러 노출을 줄이려는 뚜렷한 흐름이 나타났다”며 “단순한 정상화 수준을 넘어서는 경계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주요 6개 통화 대비 미국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10% 이상 하락해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락 속도 역시 이례적이다.

결정적으로, 달러 인덱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 최고점을 찍은 이후 급격히 하락했으며, 환율 전문가 칼 샤모타(코페이 소속)는 “미국이 고정환율제를 폐지한 이후 가장 빠르고 큰 폭의 하락”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달러 하락세는 이른바 ‘아메리카 회피(America-proofing)’ 조짐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 집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장기 국채 펀드에서는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자금 이탈이 발생했다. 이는 미국 경제와 재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또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펀드 매니저들의 ‘달러 약세’ 전망은 지난 5월 기준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유에스뱅크(US Bank) 환율부문 책임자 폴라 커밍스의 발언을 인용해 “더 많은 기업들이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로 거래를 원하고 있다”며, 이는 달러의 신뢰도에 부정적인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을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확실한 통상 정책,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급증하는 재정적자 등이 꼽힌다.

여기에 더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임기 만료를 기다리지 않고, 올여름 새 연준 의장을 지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만일 트럼프가 자신의 뜻에 맞게 금리를 조정할 인물을 내세운다면, ‘세계 경제의 안전판’으로서 미국의 신뢰도는 더욱 추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만, 외국인 투자 제한을 포함한 트럼프 세제 법안 내 일부 독소 조항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철회하겠다고 밝혀, 일각의 불안은 일부 해소된 상황이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달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최근의 혼란은 ‘달러 패권’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

바클레이스의 피오타키스는 “최근 유로화를 대안으로 고려하는 고객 문의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다만, ‘반달러 정서’가 커지고는 있지만 아직 달러를 대체할 만한 통화가 현실적으로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달러에 대한 불안감은 분명 존재하지만, 실제로 이를 뒷받침할 뚜렷한 근거는 가격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월가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직후의 흐름이다. 당시 투자자들은 미국 자산을 대거 팔아치웠고, 미 국채와 달러 역시 투매됐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애덤 슬레이터는 “이런 패턴은 보통 신흥국의 경제 불안 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라며,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정책이 더 악화될 경우 심각한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심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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