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의 파도 위, 영국 해안에서 7마일 떨어진 철제 구조물 하나가 ‘나라’를 자처하며 60년 넘게 버티고 있다. 이름하여 ‘시랜드(Sealand)’. 영국령도, 유럽 국가도 아닌, 스스로 ‘군주국’을 자처하는 이 바다 위 나라에는 통화, 우표, 헌법, 국가(國歌)까지 있다.
실제 면적은 테니스장 두 개 크기. 상설 인구는 단 한 명. 그러나 역사는 그리 짧지 않다. 해적 라디오, 쿠데타, 역쿠데타 등 각종 논란이 얽힌 이 작은 철제 국가를 CBS의 ’60 분(60 Minutes)’이 직접 찾았다.
시랜드의 군주를 자처하는 마이클 베이츠는 취재진에게 바다 위 철제 구조물을 가리켰다. 낡은 콘크리트 기둥 두 개와 철제 플랫폼으로 이뤄진 그곳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라는 시랜드다.
배에서 내리는 방법도 남다르다. 입국 심사장 대신 간이 크레인에 매달려 60피트 위로 끌어올려진다. 위험해 보여도 “자주국이니 자체 규정이다”라는 설명이다.
상주 인구는 단 한 명, ‘이민국·세관·기술 담당’을 겸직하는 마이크 베링턴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도움으로 취재진의 ‘입국 절차’를 마쳤다.
시랜드는 원래 나라가 아니었다. 1940년대, 독일 공습을 막기 위해 영국이 북해에 세운 임시 해상 요새 ‘러프스 타워(His Majesty’s Roughs Tower)’가 그 시작이었다. 100명 넘는 해병이 장기간 주둔하며 방공 임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좁은 내부를 내려가면 마치 트리하우스와 잠수함을 합친 듯한 냄새와 분위기가 감돈다. 침실과 감옥, 국가 대성당까지 갖춰져 있다. 이 곳의 군주 베이츠는 “자유로운 종교가 보장된다. 심지어 코란도 있다”며, 농담을 건넸다.
1960년대, 영국 방송을 독점하던 BBC에 맞서 ‘해적 라디오’가 이 해역에 등장했다. 당시 롤링스톤스, 비틀즈 등 인기 밴드들이 BBC에서 주당 단 한 시간 방송되던 시절, 젊은이들은 해상 라디오에 열광했다.
1965년, 베이츠의 아버지 로이 베이츠는 해적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 에식스’를 세웠다. 그러나 정부의 불법화 조치로 폐쇄된 뒤, 그는 더욱 대담한 선택을 한다. 1967년 9월 2일, 영국 영해 밖에 있는 러프스 타워를 점거하고 ‘시랜드 공국’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시랜드는 국기, 우표, 화폐, 국가, 심지어 ‘바다로부터 자유(E Mare Libertas)’라는 국가 모토까지 갖췄다. 가족 단위로 생활을 이어가며 외부의 침입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고 경고 사격을 하는 등 ‘국방’도 이어나갔다.
영국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유사 해상 요새를 폭파하며 압박했고, 심지어 영국 국방부가 작성한 ‘시랜드 침공 작전계획’이 뒤늦게 공개되기도 했다.
1978년, 독일과 네덜란드 출신 변호사와 상인들이 헬기로 침공해 반란을 일으켰다. 베이츠는 구금됐고, 시랜드는 잠시 점령당했다. 그러나 3일 후, 베이츠 부자는 무장 세력을 이끌고 헬기로 반격해 시랜드를 탈환했다.
체포된 쿠데타 주동자 ‘푸츠’는 시랜드 법에 따라 화장실 청소와 커피 제공, 그리고 3만7천 달러의 반역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 과정에서 독일 외교관이 파견돼 협상에 나서며 사실상 국가 간 외교 관계를 형성하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됐다.
국제법상 독립국 요건인 정부, 명확한 영토, 상주 인구, 타국의 승인 중 상당수를 충족한 셈이다.
<심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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