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국장 증언과 충돌 우려
2020년 7월 오헤어 공항, 중국발 가짜 면허증 2만장 적발돼
연방수사국(FBI)이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국 공산당의 선거 개입 정황을 담은 정보를 당시 국장인 크리스토퍼 레이의 의회 증언과 모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차단한 사실이 내부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척 그래슬리 상원 법사위원장이 1일 공개한 FBI 내부 이메일에 따르면, FBI는 2020년 9월 중국발 우편 투표 부정 가능성을 제기한 정보 보고서를 처음 배포한 뒤, 해당 보고서가 주목을 받자마자 곧바로 회수했다.
FBI는 회수 사유로 ‘신뢰성 부족’을 내세웠고, 보고서를 작성한 올버니(Albany) 사무소에 정보원을 재인터뷰하라고 지시했지만, 이에 대한 재배포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FBI 본부 이메일에서는 “해당 보고서가 레이 국장의 의회 증언과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가 직접 언급되기도 했다.
FBI 마셜 예이츠 부국장은 지난달 27일 그래슬리 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해당 정보 보고서(IIR) 회수는 비정상적인 결정이었다”며 “정보 보고 절차의 독립성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자유가 훼손됐다는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밝혔다. 예이츠는 “해당 정보원은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됐으며, FBI가 신뢰 부족이나 허위 정보 이유로 폐기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회수된 정보 보고서는 2020년 9월 25일 올버니 사무소가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 당국이 2020년 8월 대량의 가짜 미국 운전면허증을 제작해 미국으로 밀반입했으며, 이를 통해 “중국 공산당에 우호적인 수만 명의 중국계 유학생 및 이민자들이 당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자인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실제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같은 해 7월 말, 시카고 오헤어국제공항에서 중국발 가짜 운전면허증 약 2만 장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상당수는 인근 주로 향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해당 보고서 배포 직후, FBI 본부는 향후 모든 선거 관련 정보는 본부 사전 승인을 받도록 새 규정을 도입했다.
올버니 사무소는 정보원을 직접 만나 추가 정보를 확보했다. 당시 FBI에 따르면, 그는 중국 공산당원은 아니며, 공산당 집권 이전(1949년 이전) 중국 정부에 우호적인 성향을 가진 신중한 인물로 묘사됐다. FBI 올버니 사무소는 “그가 매우 신뢰할 만하다”고 했고, 신뢰도는 10점 만점에 9~10점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FBI 본부는 처음부터 이 정보에 회의적이었다. 레이 국장은 상원 청문회에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주요 선거에서 국가 차원의 조직적 부정 투표 시도를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본부는 내부 이메일에서 “해당 정보가 중국의 허위정보 공작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으며, 재인터뷰 후에도 “새로운 위협 정보는 없다”며 보고서 재배포를 거부했다. 본부 관계자는 “해당 정보가 레이 국장의 증언과 충돌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이츠 현 부국장은 “세관국경보호국 등 다른 정부기관의 유사한 정보와 논리적 수사 방향에도 불구하고, 본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 FBI는 “과거 실수를 바로잡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카쉬 파텔 신임 국장 취임 이후, 2020년 대선 포함 모든 조사의 진실을 의회와 국민에게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오전 해당 이메일 관련 기사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했으나, 별도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그래슬리 의원은 “이번 사태는 레이 국장 체제 하의 FBI가 얼마나 심각하게 정치에 휘둘렸는지를 보여준다”며 “팬데믹과 대선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FBI는 국가 안보 임무를 저버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정보는 진실 여부를 가리지 말고 철저히 조사해야 하며, FBI 신뢰 회복을 위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