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사회 의장 제롬 파월을 교체하고, 현직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정치권과 금융시장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법적 제한은 없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양당 상원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의 금리 정책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전례 없는 ‘이중직’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시장의 혼란과 법적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준법상 재무장관이 연준 이사회 위원이 되거나 의장직을 겸직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사라 빈더 선임연구원은 “연준법에는 의장이 재무장관을 겸할 수 없다는 조항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1935년 이전에는 재무장관이 연준 이사회에 참여한 바 있으며, 그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게 된다.
1951년 체결된 비공식 협약에 따르면, 재무부는 국채 발행과 공공부채 관리 역할을, 연준은 금리 조정과 통화공급 관리를 맡도록 분리됐다. 이 협약은 정부가 부채 상환을 위해 무분별한 화폐 발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장치였다.
컬럼비아 로스쿨의 레브 메넌드 교수는 “당시 협약은 ‘부채 관리와 통화 정책에 있어 완전한 합의(full accord)’를 선언했다”고 2023년 논문에서 밝혔다. 빈더 교수는 “금리 결정을 재정당국이 내리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으로 채권시장이 출렁이자 백악관은 서둘러 관세 정책을 일부 보류한 바 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당시 “채권시장의 반응이 조기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인정했다.
현재도 ‘상호주의 관세’ 도입 시한이 8월 1일로 연장되면서 주식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일부 정책 전문가들은 베선트의 연준 겸직은 시장에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비컨 정책자문그룹의 스티븐 마이로우는 “설령 시장이 존중하는 인물일지라도, 중앙은행 독립성을 너무 명백하게 훼손하는 조치는 시장의 거부감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독립성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결정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설계된 개념이다. 경기 침체나 실업 증가를 초래하더라도 물가 상승을 막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그러나 베선트가 트럼프의 금리 인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관용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4년 대선에서 핵심 이슈로 떠올랐던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 문제는 여전히 유권자들의 민감한 반응을 이끌고 있다.
베선트의 겸직론은 최근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인플레이션’보다는 ‘공공부채 관리’로 옮겨가고 있다는 조짐으로도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금리 인하를 촉구하며 “수천억 달러가 이자지급으로 낭비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화당이 통과시킨 3.3조 달러 규모의 감세 및 지출삭감 법안으로 연방 부채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금리 인하는 단지 경기부양뿐 아니라 부채상환 부담 완화 목적도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압박, 베선트 겸직 구상, 기타 금리 메커니즘 변경 등 일련의 움직임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로 불린다. 바이든 행정부 경제보좌관 라엘 브레이너드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이를 “재정 우위의 전형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금융연구자 네이선 탱커스는 “우리는 경제정책에 광범위한 재량을 가진 단 하나의 기관, 즉 연준이 있을 뿐”이라며, “연준은 거시경제 환경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다. 그게 전부”라고 일축했다.
<심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