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의 원인을 조사 중인 한국 당국이 “양쪽 엔진에 조류 충돌이 있었으나, 조종사들이 손상이 덜한 엔진을 껐다”는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유족과 조종사들 사이에서 강한 반발이 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AP가 지난 22일 이같이 보도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지난 주말 사고 항공기의 엔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오전 사전 설명을 들은 유가족들의 격렬한 항의에 부딪혀 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했다.
유가족 협의회 김유진 대표는 “신뢰할 만하고 독립적인 조사였다고 주장하려면, 그 주장에 부합하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며 “우리는 조종사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9일, 보잉 737-800 기종의 제주항공 여객기는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중 착륙 장치를 내리지 않은 채 동체 착륙했고, 활주로를 벗어나 구조물과 충돌 후 폭발했다. 탑승자 181명 중 단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국내 항공 참사로 기록됐다.
AP통신이 입수한 미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는 프랑스 사프란(Safran)과 GE가 제작한 엔진에 결함은 없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보고서는 우측 엔진이 조류 충돌로 심각한 내부 손상을 입고 화염과 검은 연기에 휩싸였으나, 조종사들은 좌측, 즉 피해가 더 적은 엔진을 껐다고 기록했다. 이는 조종석 음성기록장치(CVR)와 비행기록장치(FDR), 그리고 엔진 검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다만 보잉 항공기의 블랙박스는 사고 약 4분 전부터 기록이 중단돼 사고 원인 분석에 어려움을 주고 있으며, 보고서에 언급된 자료는 기록이 멈추기 전까지의 내용이다.
보고서는 조종사들이 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하지 않았고, 그것이 명백한 실수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유족들과 항공사 조종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주항공과 다른 항공사의 조종사들은 “조종사의 실수로 몰아가는 근거 없는 추측”이라며, 음성기록장치와 비행기록장치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민항조종사노조연합은 23일 성명을 통해 “6,500명의 민항 조종사들은 중립성을 상실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주장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제주항공 노조도 성명을 통해 “덜 손상된 엔진으로 비행을 계속했다면 사고 없이 착륙했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할 과학적 증거를 당국은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이번 중간 보고서는 엔진 외 요소들, 예를 들어, 항공기가 충돌한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관제 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해당 구조물은 항공기의 착륙을 유도하는 ‘로컬라이저’ 안테나가 설치된 설비였으나, 지나치게 견고하게 건설되어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부 조종사들은 “무안공항이 국토교통부 직할 관리 하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당국이 구조물이나 조류 충돌 문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항철위와 국토부는 유족 측의 요청을 존중한다며 엔진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사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AP통신에 “정부는 조류 충돌 정보가 조종사들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 제주항공의 비상 상황 훈련이 충분했는지 등 다양한 요소를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발표는 유족 측의 요청에 따라 엔진 부분만 따로 먼저 공개하려 했던 것이며,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할 의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항철위는 내년 6월까지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권보훈 극동대학교 항공대학장은 “이번 엔진 조사 보고서는 조종사 판단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감정만 자극했다”며 “조잡한 보고서”라고 혹평했다.
반면 국토부 출신으로 현재 대학교에 재직 중인 한 교수는 AP에 “조종석 음성과 비행기록 데이터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며 “기록에 기반한 분석이라면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청했다.
<심영재 기자>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
1038 S Milwaukee Ave Wheeling, IL 60090
제보:224.283.8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