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여성 리더와의 만남①] 심정열 전 시카고 한인여성회 회장
시카고 한인사회 70년 역사 속에서, 한인 여성의 권익 향상과 차세대 육성을 위해 헌신해 온 인물이 있다. 바로 심정열 전 시카고 한인여성회 회장이다. 그는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이민 여정과 커뮤니티 활동의 발자취를 차분히 돌아봤다.
1977년 미국 땅을 처음 밟은 심 전 회장은 빈손으로 시작해 시카고 한인사회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여성 리더로 기억된다. 내후년이면 이민 생활 50년을 맞이한다는 그는 “절반은 열정으로, 절반은 봉사로 채웠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심 전 회장은 미국 도착 직후 알바니 뱅크와 레번스드 뱅크에 입사해 은행원으로 일했다. 당시 영어에 서툰 한인 이민자들을 돕기 위해,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 시험을 통과해 정식 은행원 자격을 얻었고, 10여 년간 금융업에 종사하며 한인 커뮤니티와 신뢰를 쌓았다.
이후 심 전 회장은 본격적으로 봉사 활동에 나섰다. 시카고 한인여성회 회장을 비롯해, KWCA(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이사장, 글로벌 어린이재단 시카고 지부 창립자 등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커뮤니티의 발전을 이끌었다.
1988년, 시카고 한인여성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커뮤니티 리더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여성회 활동은 단순한 사교 모임을 넘어, 실질적인 교육과 정보 제공의 장으로 기능했다.
영어 교실, 붓글씨 교실, 북클럽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특히 한인 부모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자녀 대학 진학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자녀 대학 진학 세미나에는 최대 300여 명이 몰려들어, 신라식당 대연회장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심 전 회장은 “지금 생각해도 가장 가슴 뭉클했던 순간 중 하나”라며 “한인 부모들의 뜨거운 자녀 교육 열기를 봤다”고 회상했다.
또한 맞벌이 이민 가정의 증가로 자녀 돌봄에 대한 어려움이 커지자, 그는 ‘형제 맺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은 대학생 형·누나와 초등학생 아이들을 매칭해, 공부와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가정교사 제도와 유사했다. 더불어 미국 교육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와 자녀들을 위한 세미나도 정기적으로 열어, 차세대 리더 육성에도 힘썼다.
1998년 한국이 IMF 경제 위기를 맞았을 때, 심정열 전 회장은 여성 리더로서 ‘글로벌 어린이 재단’ 시카고 지부 설립에 앞장섰다. 지하실에서 50명이 모여 시작한 작은 재단은 미주 전역 23개 지부로 확장됐으며, 그 중 시카고 지부는 최고의 성과를 이뤘다. 심 전 회장은 이 재단을 통해 시카고뿐만 아니라 미전역에서 아이들을 돕고, 한국을 후원하는 데도 앞장섰다.
또한 그는 KWCA(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이사장으로서 시카고 내 여러 단체 간 협력의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여성회와 KWCA는 자체 건물이 없어 기금 모금을 위한 바자회, 음악회, 옥션 등을 열었다. 특히 장사익 씨를 초청해 시카고 다운타운 극장에서 진행된 공연은 지역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인사회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은 단체 운영을 넘어 지역 전체를 하나로 묶는 역할로 이어졌다. 여성회 이사회 창설, 다양한 커뮤니티 리더 영입, 협력 사업 등은 지금도 이어지는 시카고 한인 여성회 조직력의 기반이 됐다.
그는 “오랜 시간 봉사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외로움을 채워주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덕분이었다”며 “여성들은 서로 연대할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들은 은퇴 후에도 문화 활동, 자원봉사, 공부 등을 통해 자신을 계속 성장시켜야 한다”며 “진한 향기의 꽃은 빨리 시들지만, 은은하게 오래 피어나는 꽃처럼 우리도 인내와 조화로 커뮤니티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 전 회장은 “이민 초기에는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함께 뭉치고 서로 도우며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비록 공식적인 직함은 내려놓았지만, 그는 여전히 후배 리더들에게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자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심 전 회장은 “앞으로도 시카고 한인사회를 위해, 그리고 후배들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하겠다”고 다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전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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