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은의 명화 여행]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 ‘파울 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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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새가 있는 풍경> 한밤중처럼 어두운 공간에 기이한 모양의 나무와 식물이 자라는 것이 어찌 보면 사막의 오아시스 같기도 하고, 혹은 동양의 어느 한 나라의 풍경인 것처럼 묘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거꾸로 있는 새들도 보이는 점이 재미나다.

파울 클레 1879-1940

파울 클레(사진)는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독일 국적의 화가로, 음악가인 부모의 영향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바이올린 실력은 전문가 수준이어서, 11세에 이미 스위스 관현악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21세에 회화를 선택한 뒤에도 여러 음악가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1898년부터 1901년까지 독일 뮌헨에서 수학한 그는 1911년 칸딘스키 등과 교류를 시작했다. 1920년에는 바우하우스 교수로, 1930년에는 뒤셀도르프 미술학교 교수로 활동하며 1933년까지 독일에 머물렀다. 그러나 나치의 예술 탄압으로 작품 102점을 몰수당하자 고향 스위스로 돌아갔다. 그는 희귀병으로 61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주로 소품 위주의 작품 9,000여 점을 남기며 현대미술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클레의 초기 작품은 대부분 무채색이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채색을 통해 생명력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화풍을 넘나들며 각 시기마다 독특한 화풍을 낳았고, 말기에는 아동화와 같이 단순한 표의적 형상, 기호, 암호에 의한 심리적인 심상의 표현을 작품에 반영했다. 클레는 스위스 추상회화의 대표 작가로서 사람의 잠재의식과 환상을 묘사하여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클레의 작품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순수한 환상의 산물’이라 평가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작품이 상상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사물을 보이도록 만드는 일이다.”
“색은 나를 소유하고, 그것은 나를 영원히 소유하고 있음을 안다. 이 순간만큼은 색과 내가 하나 되는 행복한 느낌이다. 나는 화가이다.”

클레의 작품은 우주적 공간과 유사하다. 리듬과 화음, 그리고 멜로디가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21세기 입자물리학자들이 찾아낸 ‘우주의 본질’이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클레가 천사를 주제로 그린 작품은 총 50점에 가까운데, 60% 이상이 죽음을 앞둔 2년 동안 그려졌다.
“나의 날개는 날 준비가 되어 있고, 나는 기쁘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의 그림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영혼이 내뿜는 해맑고 깨끗한 선율이 느껴진다. 클레에게 자연은 온갖 음으로 가득 찬 경이로운 공간이었다. 어른들은 알 수 없는 세계. 클레는 그 초록빛 비밀의 시간들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또 다른 그의 작품인 <고가다리의 혁명>을 포함해 클레가 남긴 말년의 작품들이 그토록 훌륭할 수 있었던 것은, 유머러스하고 즉흥적이었던 그가 질병을 통해 좀 더 진지하고 심오한 세계관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와 관련된 하나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는데, 한때 화가 지망생이었고 예술작품을 광적으로 좋아했으나 자기 취향에 맞지 않은 추상 작품을 싫어했던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행해진 현대미술을 탄핵하기 위한 별도의 전람회—퇴폐미술전이 열렸었는데, 프란츠 마르크,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등 추상화가들은 ‘광기와 정신병’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뮌헨에서 개최된 <퇴폐미술전>은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한 반면, <위대한 독일 미술전>은 60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또한 <위대한 독일 미술전>에 작품을 전시한 화가 중 현재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이들은 거의 없거나,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예술가로 기억되는 반면, <퇴폐미술전>에 전시되었던 화가들의 이름은 그 예술성에 대한 평가와 함께 오늘날까지 면면히 전해진다.

화가 클레를 추모하며 마종기 시인이 쓴 ‘화가 파울 클레의 마지막 몇 해’ 중에서:

“나는 그의 그림 속에서 전신성 경피증을 보았네.
어두움의 골목을 숨겨준 질긴 눈물도 보았네.
음식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식도로
두 팔과 다리를 접지도 펴지도 못하고
온몸의 장기가 굳어가던 마지막 몇 해,
힘에 부쳐 연필로 그린 그림이 외치는 것도 보았네.
그가 죽은 해에 그린 그림 제목. ‘Durchhalten!’
‘끝까지 견디자!’며 단단한 줄들을 이어 놓았지만……”

그의 첫 번째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2005년에 스위스 베른에 개관한 파울 클레 센터에서 그의 대부분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홍성은 작가
시카고 한인 미술협회 회장
미술 심리치료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