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고용 논란… ‘세금 없는 고용’과 구조적 부조리
현지 채용 직원 버티기 어려운 체계적 문제
하청업체에 책임 전가… ‘최대 피해자’로 남다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차·LG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이 불법 체류 혐의로 무더기 연행된 사건이 해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 대통령실은 미국 측과의 교섭이 마무리돼 곧 행정 절차가 끝나는 대로 전세기를 띄워 귀국 절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손발이 결박된 채 버스에 오르는 장면이 공개되며 국민적 충격을 준 이번 사태는 대규모 외교 마찰로 비화하지는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단순한 비자 관리 문제를 넘어선 구조적 모순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관련기사 6일자 A1
전문가들은 “조지아주가 투자 유치를 통해 고용과 세수를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현장에는 세금을 내지 않는 불법 체류 인력이 대거 투입됐다”며 “이번 사태는 투자와 고용 뒤에 가려진 모순이 드러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연간 30만 대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사바나 공장을 3교대로 가동할 계획이다. 그러나 ‘리걸파워컨설팅사’의 데이빗 윤 대표는 “사바나는 관광 도시로 외부 인프라가 열악해 제조업 운영에 적합하지 않다”며 “차량 생산량은 늘려야 하지만 입지 자체가 악조건이어서 어려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바나는 이미 실업률이 3%에 불과한 완전고용 상태로, 지역 주민을 신규 채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타주 인력이나 한국인 기술자들이 편법적으로 투입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공장 착공 이후 주택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집값과 렌트비가 폭등했고, 현지 주민들은 “현대차 공장이 생활비 부담을 키웠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세금이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다수의 협력사 근로자들이 ESTA나 단기 상용 비자로 입국해 현장에 투입됐으며, 급여는 한국 계좌를 통해 지급돼 미국 내 세금 신고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협력사에서 근무했던 한 관리자는 “합법적으로 근무하는 인력은 급여의 25~30%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하지만, ESTA나 단기 비자로 온 근로자들은 미국 내에서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며 “이 점이 미국 정부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빗 윤 대표도 “조지아주가 투자 유치를 통해 고용과 세수를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현장에는 세금을 낼 수 없는 불법 인력이 대거 투입됐다”며 “이번 사태는 투자와 고용 뒤에 가려진 모순이 드러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투자는 늘었지만, 정작 미국에는 세금이 들어오지 않는 ‘빈 껍데기 고용’이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주재원 중심의 폐쇄적 문화다. 영어 소통이 서툰 주재원들은 현지 직원과 협업이 원활하지 않았고, 결국 다루기 쉬운 한국 하청업체 인력을 불법적으로 투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본보에 제보한 엔드류 씨(가명, 시민권자)는 현지 채용을 통해 6개월 간 조지아주에서 근무했다고 밝혔다. 그는 “타주에서 채용되서 이사를 위한 소액의 정착 지원금을 받고 조지아로 갔지만, 현지 채용 직원들의 처우는 만족스럽지 않았다”며 “주재원이나 협력사 직원들은 주거비와 식사비 등 다양한 지원을 받지만,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인 현지 채용 인력은 급여 수준도 낮고 주거비나 식사비 등의 지원은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그는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 및 차별적인 구조를 견디지 못해 퇴직하고 원래 지역으로 돌아왔다”며 “현지인들이 오래 버틸수 없는 체계”라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현지에도 충분한 기술 인력이 있음에도 언어·문화 장벽과 차별적 지원 구조가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하청업체 역시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로 꼽힌다. 현재 조지아주 건설 현장에서 근무 중인 한 제보자는 “현대와 모비스의 주재원들의 경우 본사 소속으로 모두 비자를 받아왔기에 책임을 피했지만, 그렇지 못한 하청업체만 희생됐다“며 “마감 시한 압박 속에 비자를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인력을 투입하다가 결국 모든 책임을 전가받았다”고 전했다.
한 협력사의 법률대리인(익명 요구)은 본보와의 연락에서 “이민 당국 관계자들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연행될지 몰랐다고 했다”며 “현재 단속으로 수용된 협력사 근로자들은 구금시설에서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일반 죄수들과 같이 섞여 배치됐으며, 면회조차 자유롭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 직후인 5일 백악관에서 “ICE가 할 일을 한 것”이라며 미국 내 불법 노동 단속을 정당화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좋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기업 투자를 환영한다면서도 “이민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발언은 현대차 사태를 계기로 “투자는 환영하지만 불법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백악관의 분명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백악관 국경 담당 톰 호먼은 CNN 인터뷰에서 “이번과 같은 외국 기업 불법 체류자 단속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단속 강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데이빗 윤 대표는 “이번 사태는 한국에서 말하는 외교 문제라기보다, 현대차 미국 공장 건설의 구조적 실패를 드러낸 사건으로 볼 수 있다“며 “불법 고용과 세금 회피, 주재원 중심의 폐쇄적 문화, 하청업체 전가 등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는 만큼, 근본적 대책 마련 없이는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E4 법안 통과돼도… 한국 기술자 대다수 발급 ‘불투명’”
<윤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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