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달 미주총연 제2대 회장 인터뷰
미주한인회총연합회(이하 미주총연) 제2대 회장을 지낸 박해달 전 회장이 9월 초 본보를 찾았다.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렷한 눈빛과 차분한 어조로 270만 미주 한인사회를 향한 깊은 고민과 진심 어린 제언을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풀어냈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회고가 아닌, 현 미주총연 사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박 회장은 현재 두 갈래로 나뉘어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총연의 현실을 직시하며, 다시 하나로 통합된 총연을 위한 길을 제시했다.
“싸움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15년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박 회장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1978년 미주총연 창립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한 인물로, 미주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수십 년간 헌신해 온 대표적인 원로다.
1955년 유학생 신분으로 도미한 그는 시카고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며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가족들은 그가 목사나 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그는 외교관 또는 정치인을 꿈꾸며 미국행을 택했다.
광복절, 아스토리아에 태극기를 올리다
1962년, 시카고 파머하우스 호텔에 경영분석가로 입사한 그는 이후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로 승진했다. 이곳은 세계 각국 정상들이 머무는 정치·외교의 중심지로, 상징성이 큰 장소였다.
박 회장은 이 호텔에서 1972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호텔 정문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뜻깊은 일을 주도했다. 뉴욕시의 관례와 호텔 내규에 따라 외국 정상 방문 시에만 국기를 게양하던 전통을 깨고, 당시 대통령 방문이 없었음에도 태극기가 처음으로 걸린 날이었다. 이 장면은 서울경제신문에 보도되며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는 수백 통의 격려 편지를 받으며 한국인들의 자긍심을 드높인 인물로 기억됐다.
그는 이후 세 차례 시카고 한인회장을 지내며 지역 사회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1994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임명으로 워싱턴 D.C.의 우드로 윌슨 국제연구소 이사로 임명됐다. 해당 재단은 민간 연구소 중에서도 대통령 직속으로 이사진을 임명할 만큼 위상이 높은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박 회장은 1996년, 아시아계 이민 1세대 가운데 처음으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며 정치에도 발을 내디뎠다. 또한 그는 한인 최초로 일리노이 주 부동산 교육 및 감독위원으로 임명됐으며, 1977년 설립한 ‘동서부동산’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미국 장로교 총회 역사편찬위원, 세계전도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교계에서도 꾸준히 헌신해 왔다.
“총연, 명예직 아닌 실질 기구 돼야…”
한인사회뿐 아니라 주류사회, 국제사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던 박 회장이 다시 총연에 대한 입장을 밝힌 이유는 단 하나다. 분열된 총연을 바로잡고, 다시 하나로 꽃 피우기 위함이다.
박 회장은 “총연이 이름뿐인 단체로 전락해선 안된다”며 “지금의 법적 다툼과 갈등은 한인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전체 동포사회의 위상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본부를 시카고로 이전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 아래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며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선거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양측 모두가 자진 사퇴하고, 혼란을 유발했던 모든 불투명한 구조를 정리해야 한다”며 “정말로 한인사회를 위한 조직이라면 지금의 혼란을 끝내고 새로운 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세대에 기회를… 시카고에서 새 출발하자”
그는 이제 1.5세대와 젊은 리더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총연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총연은 명예직이 아니라, 270만 동포의 권익을 위한 실질적인 기구“라며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하며, 한국과 미국 사이의 가교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 지역의 현직 회장, 이사장, 주요 도시 대표들이 참여하는 공정한 선거를 내년 초 치르도록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둬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그는 “총연의 부끄러운 실태를 보고도 모르는채 하면 스트레스도 안받고 마음 편하겠지만, 내가 이대로 침묵하는 건 창립 멤버로서 너무 비겁한 일”이라며 ”새롭게 변화한 총연의 시작을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는 정말, 그만 싸웁시다.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되는 모습을 후세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윤연주 기자>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
1038 S Milwaukee Ave Wheeling, IL 60090
제보: 847.290.8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