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인입니다” 미국 여행객이 국적 숨기고 단풍 붙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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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NN

20년 만에 다시 퍼진 ‘플래그 재킹’ 재유행
“해외여행 시 반미 정서 피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미국 여행객들 사이에서 다시 떠오른 낯익은 생존 전략이 있다. 바로 해외여행 중 자신이 캐나다인인 척하는 것이다. CNN은 이 같은 현상을 ‘플래그 재킹(Flag Jacking)’이라고 소개하며, 일부 미국인들이 가방에 캐나다 국기를 달거나, 온타리오 출신이라고 소개하며 따가운 시선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확산 중이라고 18일 보도했다.

뉴욕 출신의 첼시 메츠거(33)는 올해 초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겪은 경험을 언급했다. 약혼자와 함께 휴가를 즐기던 그는, 한 프랑스계 캐나다인 바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결승전을 관람하다가 문제가 생겼다. 미국이 골을 넣자 “우와~ USA!”라고 외친 메츠거는 곧바로 근처 다른 커플들의 격한 항의를 받았다고 전했다.

며칠 후 택시를 잡으려던 메츠거는 기사로부터 “캐나다인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아니다, 미국인이다”라고 답하자 택시는 그대로 떠났다. 그날 이후, 그는 여행 중 자신을 캐나다인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사실 ‘플래그 재킹’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00년대 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던 시절에도 미국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비슷한 행태가 퍼졌었다. 당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는 리사 심슨이 유럽 여행을 앞두고 “이번 주만큼은 캐나다인으로 산다”며 가방에 캐나다 국기를 붙이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CNN은 이처럼 여행 중 국적을 속이는 이유에 대해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외에서 불쾌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외교 정책과 거침없는 발언들은 전 세계적인 반미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일부 미국인들은 이를 우려해,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이미지의 캐나다인인 척 행동하며 불편함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문화 평론가인 토드 마핀은 최근 SNS 영상에서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인의 예비 여권이 아니다“라며 “캐나다는 단지 입는 옷이 아니고, 여행용 망토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영상은 조회 수 10만 건을 넘겼다.

저스틴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 역시 “우리는 우리가 미국이 아니란 사실로 자신을 정의한다”며 캐나다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미국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위장 여행’ 방식은 미국인들만큼이나 캐나다인들에게도 불쾌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초반부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식의 발언을 했고, 트뤼도 전 총리를 ‘51번째 주지사’라고 부르는가 하면, 관세 전쟁까지 이어가면서 캐나다 내 반미 감정을 키운 바 있다.

<윤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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