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향해 쏴라’의 미남 배우
▶감독·제작자로 영화계 이끌며 독립영화 부흥 이끌어
할리우드 대표 미남 배우이자 감독·제작자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뉴욕타임스는 레드포드가 16일 유타주 자택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1936년 8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태어난 로버트 레드포드는 미국연극예술아카데미(AADA)에서 공부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69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할리우드 최고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어 ‘스팅’, ‘위대한 개츠비’, ‘아웃 오브 아프리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업 클로즈 앤 퍼스널’, ‘흐르는 강물처럼’, ‘스파이 게임’ 등 수많은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황금빛 금발과 소년 같은 미소, 세련된 이미지로 1960~7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로 자리 잡았던 그는 외모에만 머물지 않았다. 화려함 이면에 정치적·사회적 주제를 다룬 작품에도 적극 참여하며 연기력과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레드포드는 배우로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동시에, 감독과 제작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80년 연출 데뷔작 ‘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감독으로서도 입지를 다졌다. 이후 ‘흐르는 강물처럼’, ‘퀴즈 쇼’, ‘호스 위스퍼러’ 등을 연출하며 진중하고 섬세한 작품 세계를 이어갔다. 2002년에는 오스카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17년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에서는 50년 전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제인 폰다와 재회했다. 2018년에는 ‘올드맨 앤 더 건’을 통해 은퇴작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고, 같은 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깜짝 출연하며 대중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1981년 선댄스 영화제와 선댄스 인스티튜트를 설립하며 미국 독립영화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티븐 소더버그, 쿠엔틴 타란티노, 대런 아로노프스키, 제임스 완 등 수많은 신예 감독들이 선댄스를 통해 데뷔 기회를 얻었다. ‘저수지의 개들’, ‘블레어 위치’, ‘위플래쉬’, ‘코다’ 등 독립영화의 명작들이 이 영화제를 통해 대중과 만났다.
처음엔 소규모 행사였던 선댄스 영화제는 레드포드의 지원 아래 미국 최대 규모의 독립영화제로 성장했다. 영화제 운영이 어려워질 때마다 그는 사비를 들여 유지했으며, 2025년에는 8만 명 이상이 참석하는 세계적인 영화제가 됐다.
레드포드는 배우이자 감독을 넘어 헌신적인 환경운동가로도 활동했다. 1960년대 유타로 이주해 자연 속에서 살며 환경 보호에 관심을 키운 그는, 개발 계획에 반대하며 직접 캠페인을 벌였다. 1970년 유타주의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고, 1975년에는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며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기후변화, 공공정책, 자연보호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꾸준히 목소리를 냈으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도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레드포드는 자신의 인기와 영향력을 사회를 위한 일에 적극 활용했다.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그리고 활동가로서 그는 60년 넘는 세월 동안 미국 영화계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부고 기사에서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이슈를 영화로 풀어내며 대중의 공감을 이끌었다”며 “할리우드 대표 배우였던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진정한 활동가였다”고 평가했다.
<윤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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