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毛)르면 손해, 제시카 박의 탈모 이야기 1.]모발이 사라지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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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피 속 생태계의 붕괴
모낭을 공격하는 ‘염증’의 정체를 밝히다

“DHT 억제제도 먹고, 비싼 샴푸도 써봤는데 탈모가 계속돼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지난달 클리닉을 찾은 김모 씨(52세)는 지친 표정으로 털어놨다. 김씨처럼 기존 탈모 치료법에 한계를 느끼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유전이나 남성호르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탈모 사례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피부과학계에서는 탈모의 원인을 새롭게 조명하는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탈모의 근본 원인이 단순히 호르몬이나 유전이 아닌, 두피 속 미생물 생태계의 불균형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두피 속에도 ‘생태계’가 있다

사람의 두피에는 약 1,000억 개가 넘는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들은 마치 열대우림처럼 다양한 종으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건강한 두피는 이 미생물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좋은 세균은 두피를 약산성으로 유지하며 유해균의 증식을 막는다. 그러나 세정 습관, 환경 변화, 스트레스 등 여러 요인으로 이 균형이 무너지면 유해균이 증식하고, 만성 염증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염증은 모낭 주변 조직을 손상시키고, 모발 성장 주기를 단축시켜 결국 탈모로 이어진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연구팀이 탈모 환자 200명을 조사한 결과, 80% 이상에서 두피 미생물 불균형과 함께 염증 수치가 일반인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서, 두피 염증이 탈모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는 것이다.

중년 이후, 악순환의 시작

중장년들에게는 이러한 문제가 더 민감하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40~50대는 직장과 가정, 부모 부양 등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쉽고, 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킨다.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두피의 유익한 미생물들이 점차 사라진다. 미국의 경우, 건조한 기후와 강한 자외선, 수돗물 속 염소 성분까지 더해지면 두피 환경은 더욱 악화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노출되는 이 환경 속에서 두피는 점점 방어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50대에 들어서면 호르몬 변화로 두피의 피지 분비가 급감한다. 피지는 유익균의 서식지이자 에너지원인데, 이 양이 줄어들면 유익균은 감소하고 대신 말라세지아 같은 곰팡이균이 자리를 잡는다. 이 곰팡이는 독성 물질을 분비해 모낭에 염증을 일으키고, 결국 모발이 점점 가늘어지다 빠지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탈모 관리의 핵심은 두피 균형 회복

이러한 탈모의 원인을 고려할 때, 중요한 것은 두피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되돌리는 일이다. 강한 화학 성분이 들어간 샴푸, 특히 황산염이 함유된 제품은 나쁜 세균뿐만 아니라 좋은 세균까지 제거하므로 피해야 한다.

대신 아미노산 계면활성제를 사용한 순한 제품이 권장된다. 이런 제품은 두피의 자연 보호막을 지키면서도 세정력은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두피의 pH를 약산성으로 유지하는 것이 유익균 생존에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유산균 개념을 두피 케어에 적용한 제품들도 등장하고 있다. 발효 식물 추출물이나 두피용 프로바이오틱스를 활용해 유익균을 직접 공급하거나 먹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특히 한국의 발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품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두피 깊숙이 작용해 생태계 복원을 돕는 효과가 기대된다.

앞서 언급한 김씨 역시 미생물 균형 회복에 초점을 맞춘 제품을 사용한 지 3개월 만에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두피 가려움과 각질이 사라졌고, 6개월 후부터는 잔털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는 “두피가 살아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며 변화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탈모를 단순히 유전적 문제로만 받아들이기보다, 두피 환경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이미 손상된 모낭을 되살리기는 어렵지만, 남은 모발을 보호하고 두피 건강을 회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음 칼럼에서는 스트레스와 환경 변화가 두피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두피 관리법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예정이다.

제시카 박 스킨케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