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영사관 번호 조작 ‘보이스피싱’ 기승

5
주미대사관, 총영사관 사칭 보이스피싱에 주의하세요! [AI 생성이미지]

▶ 한인 노리는 공관 사칭
▶ 갈수록 치밀하고 악랄
▶ ‘수사 사각지대’ 악용
▶ 외교부 통계 현실 괴리

미주 한인들을 상대로 주미대사관이나 총영사관 등 재외공관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한인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한국 외교부의 통계에는 이같은 공관사칭 범죄의 실상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외공관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사기는 최근까지 미 서부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했다. 시애틀 총영사관의 경우 지난달 이틀간 3명의 한인들이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영사관을 직접 찾는 등 피해를 볼 뻔했다. 특히 이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발신번호를 조작해 실제 총영사관의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치밀한 수법으로 금융사기 보이스피싱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애틀 총영사관에 따르면 사기범들은 전화 받은 당사자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마약과 대포통장 등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고 협박하며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기범들은 검찰청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보안 조사를 위해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할 예정이라 텔레그램 아이디 및 설치를 강요한 뒤 이같은 사실을 제3자에게는 절대 이야기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 특히 “믿지 못할 것 같으면 영사관으로 직접 오라”는 식으로 말하며 신뢰를 높이려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지난달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거주하는 한인 홍모씨는 뉴욕 총영사관의 직원을 사칭한 사기 전화에 대해 제보하기도 했다. 홍씨는 사기범이 ‘대한민국 검찰청을 대신해 연락한다’고 하면서 특정 웹사이트에 접속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라고 요구했으며, 의심하자 검사를 바꿔준다며 다른 이와 통화를 시켜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홍씨는 “웹사이트도 너무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속을뻔 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44세 한인 이모씨는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라고 사칭하는 사기범에게 전화를 받은 경우다. 이씨가 한국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해 “공문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상대는 “대검찰청의 사건조회 사이트에 들어가보셔야 한다”면서 한 웹사이트를 알려줬는데, 이 씨가 연결이 안된다고 하자, 또 다른 주소를 알려줬다. 이 사기범이 알려준 주소는 실제 공공기관 웹사이트 주소와는 달랐다.

게다가 보이스피싱 범죄가 마약범죄와 결합하거나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최신 IT 기술을 악용하며 진화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보이스피싱 사기행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작 한국 외교부의 통계는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한국 국회 김건 국민의힘 의원실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미주 지역 재외공관 사칭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보고가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총 16건으로 집계된 것이다.

재외공관 사칭 보이스피싱 범죄는 미주 한인들을 겨냥해 한국어로만 범행이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 법집행기관의 조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또한 한국 법집행 기관은 공관 사칭 보이스피싱 범죄가 주로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이유로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사기범들은 수사의 사각지대에 숨어 미주 한인을 겨냥한 사기 행각을 계속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 한인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관할 재외공관에 연락했지만 현지 경찰에 신고하라는 답만 들었다”며 “사기범들이 한국어를 쓰고 재외국민 등 한인을 노리는만큼 한국정부 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 내 관련 법집행기관과 공조해 범죄 근절을 위한 노력을 했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재외공관 사칭 보이스피싱 범죄가 최근 증가함에 따라 예방과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며 “지난 3월 북미지역 해외안전 담당영사 회의에서도 대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지난달 한국 경찰청이 제작한 재외공관 사칭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을 위한 동영상을 각 재외공관 웹사이트에 게시하는 등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형석·서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