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께 영광, 이웃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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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교회의 장로들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이때 보여준 바울의 영성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장로들에게 선교 보고할 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선교의 주어는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였다고 고백합니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바흐는 바울을 닮은 인물이었습니다. 바흐는 성경 내용을 주제로 칸타타, 수난곡, 오라토리오 형식으로 수 많은 곡들을 작곡했는데, 악보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에 특별한 이니셜을 남겼습니다. 첫 페이지 왼쪽 맨 윗부분에는 “J.J.”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오른쪽 맨 아랫부분에는 “S.D.G.”라고 써넣은 겁니다. “J.J.”는 라틴어 “Jesu Juva”의 준 말로 “예수님 도와주소서”라는 뜻이고, “S.D.G.”는 “라틴어 “Soli Deo Gloria”의 준 말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뜻입니다. 다른 형식의 곡들에선 “I.N.J”라는 이니셜이 발견되는데, 라틴어 “In Nominee Jesu”를 줄인 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뜻입니다. 바흐는 곡을 쓸 때마다 주님께 도움을 구했고, 곡을 마치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림으로, 작업의 전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했던 겁니다. 그래서인지 바흐의 작품들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사랑과 은혜가 가득합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들과의 대화에서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먼저 생각하는 영성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선교 보고를 듣고 난 후, 장로들은 그들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교회에는 아직도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대인 성도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바울에 대해서 나쁜 소문을 들었다는 겁니다. 선교지에서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겁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아주 안 좋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도 제안합니다. 장로들의 해결책은 평소 바울이 문제를 대하고 푸는 방식과는 달랐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장로들의 의견을 수용했습니다. 바울은 교회와 장로들을 먼저 돌아보기로 결심한 겁니다. 자기 때문에 교회가 시끌시끌한 상황을 오랫동안 겪으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왔을 장로들의 입장을 이해한 겁니다. 바울은 교회도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 이후 유대교인들의 박해를 받으며 성장해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기 식대로 문제를 풀겠다고 나서면, 분명 교회는 바울을 지지하는 세력과 바울에 대해 오해를 품고 있는 세력으로 나뉘어 갈등하게 될 겁니다. 바울은 교회가 한 번 분열이 되면 얼마나 해결이 어려운지 고린도 교회를 통해 이미 겪어보았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겠다고 교회와 성도들을 어려움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없었던 겁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말씀처럼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먼저 돌보는 겸손과 배려의 삶을 실천한 겁니다. 존 울맨은 퀘이커 교인이었습니다. 존은 흑인 노예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성경 말씀을 어기는 행위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 문제를 교단에 제기했지만 어떤 안건이든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교단의 정책 때문에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존은 오랫동안 누려왔던 노예 제도의 편리함을 하루 아침에 포기하지 못하는 형제들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 이해 위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3개주를 순회하며 형제들을 일일이 찾아가 일대일로 노예 제도의 부당함을 설득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783년, 퀘이커 교단은 가장 먼저 미국 의회에 노예제 폐지 요구안을 정식 제출했습니다. 남을 먼저 배려한 존의 개혁 운동은 오랜 시간이 결렸지만, 교단의 갈등없이 더 완전한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겁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이웃을 배려하는 삶은 신앙의 기본 덕목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