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한·흑 혼혈 여성, 노숙·소녀가장서 주 대법관까지… “K-스피릿이 나를 불사조처럼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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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리 대법관. [연합]

▶ 패트리샤 리 네바다 대법관
▶ 첫 아시안·흑인계 대법관으로
▶ “돈과 화려한 직함은 허상 성공의 기준은 공동체 기여”

“K-팝은 전 세계를 잇는 강력한 문화적 교량입니다. 그 뒤엔 근면, 역경 극복, 부흥의 역사를 품은 ‘K-스피릿’이 있죠. 불사조처럼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한국인의 정신입니다.”

한·흑 혼혈 소녀가장 출신으로 네바다주 대법관에까지 오른 패트리샤 리(50) 대법관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고교생들에게 특강을 한 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재외동포협력센터가 마련한 제11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리 대법관은 자신의 인생 경험과 ‘K-스피릿’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리 대법관은 네바다주 첫 아시안·흑인계 대법관이다. 소녀 가장, 노숙, 학대의 긴 터널을 지나 최고 법관의 자리에 선 K-스피릿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네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리 대법관의 유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여덟 살 무렵 알코올 중독에 시달린 아버지 때문에 부모가 이혼했다. 이후 영어가 서툰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 둘을 돌보며 저소득층 지원금 신청서로 처음 ‘법’과 마주했다. 집세를 못내 쫓겨 다니고, 학대 피해 여성 쉼터를 전전했다. 열다섯에는 새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와 친구 집을 옮겨 다니며 버텼다.

이 같은 역경 속에서도 고교 시절 전교학생회장·응원단장을 맡아 최상위권으로 졸업했고, USC에서 심리학·커뮤니케이션을 복수 전공한 뒤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을 거쳐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부모님처럼 살까 봐, 도움 준 어른들을 실망시킬까 봐 더 치열하게 공부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그를 만들어 준 ‘구명줄’은 아낌없이 도움 준 친구들과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연방 시스템인 ‘업워드 바운드 프로그램’(Upward Bound Program)이라고 했다. 과목별 과외, 방학 때 선행학습, 입시 준비 등을 도와줬다. 그는 “부모 도움 없이도 대학에 갈 수 있었던 이유”라며 “한 사람의 연민과 사회의 제도적 손길이,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고 강조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것은 무료 법률 서비스인 ‘프로 보노’(Pro Bono)를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도왔던 것을 꼽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혼 장병의 유해가 이혼한 부모 중 ‘나이가 많은 쪽’으로 자동 인도된다는 군 규정과 맞선 소송에서 이긴 것이다. 그 결과 미혼 장병은 본인이 생전에 지정한 부모에게 유해가 인도되는 것으로 군 규정이 개정됐다. 그는 “그날 이후, 프로 보노는 제 평생 사명”이라고 했다.

가정폭력 피해 아동, 파산 직전 저소득층,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 약자가 주요 고객이었다. 이런 활동으로 그는 2013년 미국변호사협회가 수여하는 ‘프로 보노 공로상’ 첫 수상자가 됐다.

성공한 리 대법관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뭘까. “돈이나 화려한 직함이 아닙니다. 공동체에 기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공동체의 품격이라며 부연 설명을 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자기 일에서 청렴과 성실을 지키는 것, 그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리 대법관은 이날 인터뷰에 앞서 서울 대일외국어고에서 특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