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 Chagall 1887-1985
러시아 벨라루스 출신 샤갈은 2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고향을 떠나 피난민으로 살면서 평생 고국을 그리워했다. 그는 가난한 유대인 가정의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고향 마을의 벨라와 연인이 되지만 부유한 집안의 자녀인 벨라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실의에 빠져 있던 샤갈은 후원금으로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그러나 결국에 벨라를 잊지 못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그녀와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그들은 함께 프랑스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하다가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망명, 그러나 미국에서 사랑하는 아내 벨라가 사망 후 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서 많은 작품을 남긴다.
샤갈의 작품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토대로 유대인의 성서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의 원초적 향수와 동경, 꿈과 그리움, 사랑과 낭만, 환희와 슬픔 등을 신화적인 바탕으로 눈부신 색채로 작품을 펼쳐 보였다. 아내 벨라는 예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지적인 여인으로서 샤갈의 작품에 수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아내가 50대 중반에 사망하고 9개월간을 붓을 들지 못하고 우울에 빠져 지낸다. 그런 샤갈을 딸 이다가 용기를 주어 다시 작품 활동에 매진하던 중, 딸의 소개로 25세의 연하의 여인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나의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사로잡은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배열한 것일 뿐이다.” 그의 작품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염소·수탉·물고기·소 등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신비주의적인 하시디즘(신의 약속을 수호하는 사람을 의미)의 반영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세트 디자인을 맡았던 보리스 아론슨은 20대 때부터 마르크 샤갈을 알고 지내왔다고 말한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보리스 아론슨 역시 샤갈처럼 유랑의 길을 걸어왔고, 그는 샤갈처럼 고향에 대한 추억과 젊은 시절을 기억하면서 무대를 만들었다. 또한 후에 영화와 연극으로 발표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보면 샤갈의 고향을 배경으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유태인 예술가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인생의 전부였던 사랑하는 아내 벨라가 세상을 떠난 후, 샤갈이 지은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당신의 대지의 아들
나는 가까스로 걷고 있노라
당신은 내 두 손을 화필과 물감으로 가득히 채웠노라.
그러나 나는 당신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알지 못한다.
나는 하늘과 대지와 나의 가슴을
또는 불타는 도시들을 혹은 또 도망가는 민중들을
눈물로 얼룩진 나의 눈을 그려야만 하는가
아니면 나는 도망가야 하는가, 도망간다면 누구에게로,
대지 아래 생명을 낳은 그 죽음을 나누어 준 그 사람
아마도 그 사람은 나의 그림이 빛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리라.”
샤갈이 얼마나 벨라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후 그림에만 전념하던 샤갈이 느지막이 2번째 아내를 만나 98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여생을 프랑스에서 보내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생존 화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또한 그는 프랑스 최고 명예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한 바 있다.

<산책>
기하학적 추상 미술이 시작되던 시점에 그려진 작품으로 샤갈은 오히려 고전적인 형태로 돌아가 사랑스런 아내 벨라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표현하였다. 서로의 신뢰 속에 손을 꼭 잡은 두 사람의 모습을 밝은 색채로 몽환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여 작품을 보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 같은 사랑을 꿈꾸게 만드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썰매와 마돈나>
벨라의 사망 후, 그가 다시 붓을 들었을 때 이전의 밝은 색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어두운 색조와 우울한 효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화면의 대부분을 채운 투명한 푸른색과 대비된 몇 가지의 강렬한 대비색이 몽환적이며 너무나 아름답다. 후에 “샤갈의 푸른색”이라 불리우는 이 푸른색은 아내를 잃은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내재된 슬픔을 대변해주고 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
뮤지컬과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모티브가 된 그림으로 고향을 떠난 유대인의 애환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샤갈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은 시인 김춘수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을 소개하고자 한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이 시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환상적인 샤갈의 작품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도 하다.

홍성은 작가
시카고 한인 미술협회 회장
미술 심리치료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