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장기체류자 ‘국적포기’ 병역회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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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병역대상자 국적 변경 통계
▶ 지난 5년간 1만8천여명… 전체 3분의 2 달해
▶ 취득 국적은 미국이 최다… 66%가 미국 선택
▶ 선천적 복수국적 2세들 ‘국적이탈’은 구분해야

최근 5년간 병역의무 대상자 가운데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이 2만여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시간 1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병역의무 대상자(18~40세) 가운데 국적 포기자는 총 1만8,43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연평균 4,000명을 웃도는 규모다. 같은 기간 현역 입대자가 연간 약 20만명임을 감안하면, 병역자원 10명 중 1명이 국적 포기를 통해 입영 대상에서 빠져나간 셈이다.

국적 포기는 크게 ‘국적상실’과 ‘국적이탈’로 구분된다. 외국에서 장기 거주하며 외국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는 국적상실에 해당하며, 전체의 65.9%인 1만2,153명이 이에 해당했다. 선천적으로 복수국적을 보유한 이들이 한국 국적을 이탈한 경우는 6,281명(34.1%)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홍준표법’으로 불리는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지난 2006년 원정출산에 따른 병역기피를 방지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1983년 5월25일 이후 해외에서 출생한 한인 남성에게는 아버지가 한국 국적자일 경우 한국 국적이 자동 부여되고, 1998년 6월14일 이후 출생자부터는 출생 당시 부모 중 1명라도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다면 자녀는 자동으로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다. 남성의 경우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국적이탈을 마쳐야 하며, 이를 놓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 38세가 되는 해 1월1일까지 20년간 병역의무 대상자가 된다. 국적 포기 후 가장 많이 선택된 외국 국적은 미국이었다.

1만2,231명(66.4%)이 미국을 택했으며, 이어 캐나다 2,282명(12.4%), 일본 1,589명(8.6%), 호주 821명(4.5%), 뉴질랜드 516명(2.8%) 순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보면 국적상실자의 경우 61.8%(7,510명)가 미국을 선택했고, 국적이탈자의 경우 그 비율은 75.2%(4,721명)에 달했다. 반대로 국외 이주자 가운데 자원입영을 선택한 사례도 있었다.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외국 영주권자 등 2,813명이 자원입영을 신청했으며, 국적별로는 미국 511명, 중국 476명, 베트남 260명, 일본 220명, 캐나다 155명, 인도네시아 154명 등이었다.

황희 의원은 “군의 안정적인 병력 운영을 위해 병역자원 충원 대책이 중요하다”며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국적 포기에 대한 엄격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병무청도 “국적 포기를 통한 병역 회피가 병역자원 감소로 이어져 군 인력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통계는 병역 이행 여부가 계층적 요인과도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장기 유학 등 해외 체류가 가능한 ‘금수저’ 가정 자녀일수록 국적 포기를 통한 병역회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은 불가피하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의무는 여전히 중요한 청년기의 과제인 만큼, 국적 포기자에 대한 제재 강화와 성실히 복무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확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과 유학·장기체류 등으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사례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헌법소원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온 전종준 변호사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을 곧바로 병역기피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에 대한 ‘국적 자동상실제’ 도입을 통해 이들의 병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