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으로 이어가는 섬김… 은퇴 의사 홍건의 두 번째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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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건 박사 제공

전시회 수익금 전액은 선교· 의료 봉사 기부

시카고에서 오랫동안 의료 현장에서 헌신해온 홍건(Dr. Kuhn Hong) 박사가 은퇴 후 미술가로 새로운 삶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판매 수익 전액을 선교와 의료 봉사에 기부하며 지역사회에 따뜻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서울에서 태어난 홍 박사는 어린 시절 피난지에서 어머니가 가져온 종이 뒷면에 그림을 그리며 예술적 재능을 발견했다. 학생 시절 각종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았지만, 전쟁 직후 생계를 걱정한 아버지의 권유로 미술 대신 의학의 길을 택했다. 홍 박사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해군 복무를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와 영상의학과와 핵의학과 전문의로 30년 넘게 환자를 돌봤다.

의사의 길을 걷는 동안에도 그림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병원 업무와 진료 사이에도 스케치북을 꺼냈고, 남미·아프리카·아시아 등 30여 개국을 오가며 의료 선교를 하던 시절에는 매일의 풍경과 환자들의 모습을 연필로 기록했다. 전기가 없는 마을에서 해가 뜨면 곧바로 시작되는 진료, 하루 수백 명을 돌보는 일정 속에서도 그는 “그림 한 장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노트”라고 말했다.

홍 박사의 삶을 바꾼 가장 큰 전환점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보낸 5년이었다. 그는 신설 의과대학 설립을 돕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한국전 참전용사 후손을 위한 장학석을 병원 정원에 마련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시기 제작한 작품들은 한국 갤러리에서 전시됐고, 판매 수익은 모두 에티오피아 의대 장학금과 의료 지원으로 이어졌다.

은퇴 후 그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삶에 몰두했다. 시카고와 미시간시티를 오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의 스튜디오에는 풍경화·인물화·도시의 장면이 가득하다. 팬데믹 시기에는 마스크를 쓴 의료진과 비어 있는 도시의 풍경을 그렸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난민과 중남미 이민자들의 모습을 담아 시대의 아픔을 화폭에 기록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도 시카고와 한국 갤러리에서 꾸준히 전시되고 있다. 판매 수익 역시 전액 선교·장학·의료 지원에 사용된다.
홍 박사는 “제가 받은 재능을 다시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의사로서 사람을 살피던 마음이 이제는 그림을 통해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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