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가격 역대급 급등… 식탁 습격 ‘물가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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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주식인 소고기와 필수재인 커피 가격이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2025년 식탁 물가 쇼크’를 주도했다. 캘리포니아의 한 마트 전경. [로이터]

올해 소고기 값만 25% 올라
▶ 이상 기온과 가뭄 겹치며
▶ 커피값도 최대 35% 치솟아
▶ 당분간 가격 상승세 지속

미국인들의 식탁이 유례없는 물가 폭풍에 휘말리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주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 2%대 안착을 시도하며 거시적 지표상으로는 ‘안정기’에 접어든 모습이지만, 실제 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영하권이다. 특히 미국인의 주식인 소고기와 일상의 동반자인 커피 가격이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2025년 식탁 물가 쇼크’를 주도하고 있다.

올 한 해 미국 내 식료품 물가 상승의 정점에는 소고기가 있다. 노동통계국과 농무부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소고기 가격은 전년 대비 최대 25% 치솟았다. 일부 고급 스테이크 부위와 다진 소고기는 지역에 따라 30% 이상의 인상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프플레이션’(Beef-flation)의 근본 원인은 수년간 축적된 기후 재앙에 있다. 텍사스, 네브래스카 등 주요 축산 벨트를 강타한 기록적인 가뭄이 2024년을 거쳐 2025년 초까지 이어지면서 목초지가 황폐화됐다. 사료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축산 농가들이 암소까지 도축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현재 소 사육 두수는 1950년대 이후 약 7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불균형은 소매 가격으로 고스란히 전이됐다. LA에 사는 가정주부 김씨는 “작년에 10달러면 사던 소고기 팩이 이제는 15달러를 훌쩍 넘는다”며 “이제 주말 바비큐는 특별한 날에나 누리는 사치가 됐다”고 토로했다.

커피 역시 물가 급등의 주역이다. 올해 커피 가격은 품목에 따라 20%에서 최대 35%까지 상승했다. 국제 원두 시장에서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선물 가격이 기후 변화와 물류 차질 여파로 4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의 이상 저온과 가뭄, 베트남의 기록적인 폭우는 원두 수확량을 반토막 냈다.

여기에 올 하반기 강화된 무역 관세 정책과 해상 운임 상승이 겹치면서 수입 원가 자체가 폭등했다. 경제 분석가들은 “커피는 중독성이 강한 필수 기호품이기 때문에 가격 상승이 가계에 미치는 심리적 압박이 다른 품목보다 훨씬 크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5달러 커피’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기본 메뉴조차 7~8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소비 심리는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이토록 식료품 물가가 이토록 요동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먹거리 물가의 하방 경직성’으로 설명한다. 에너지 가격이나 중고차 가격은 하락할 수 있지만, 한 번 오른 식재료 가격은 인건비와 임대료, 물류비 상승분과 맞물려 쉽게 내려가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은 작년보다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소고기, 계란, 커피, 일부 채소류 등 필수 식자재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은 사실상 줄어들었다.

문제는 내년에도 상황이 크게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소의 생육 주기는 보통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의 소 사육 두수 부족 현상이 해결되어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서려면 최소 2027년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농무부의 관측이다. 커피 역시 엘니뇨와 라니냐 등 기상 이변이 일상화되면서 생산량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한 경제 전문가는 “경제 지표의 화려한 숫자 뒤에 숨겨진 식탁의 비극은 2026년 미국 경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박홍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