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Cezanne 1839~1906
폴 세잔은 프랑스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공부했으나, 화가가 되겠다는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1861년 파리로 떠났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일을 돕기도 했고, 다시 파리로 향하는 등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1860년대 초부터 살롱전에 수차례 도전했지만 오랜 기간 인정받지 못했으며, 파리에 정착한 지 약 20년이 지난 1882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살롱전에 작품이 입선되며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세잔을 이야기할 때 그가 진정한 스승으로 모셨던 피사로(1830.7.10~1903.11.13)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소심하고 예민했던 세잔은 동료 화가들과의 관계가 평탄치 않았고 주위에 친구도 많지 않았다. 그런 그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계속 그림을 그리게 하고, 내면의 눈을 믿게 해주고, 자연을 발견하게 해준 것은 따뜻한 아버지와 같은 피사로였다. 실제로 세잔의 친아버지는 아들이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바람을 버리고 화가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대단히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다행히 세잔에게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피사로가 있었고, 세잔은 이런 피사로를 두고 사랑이 충만한 신과 같았다고 말했다.
세잔이 풍경이나 정물을 그릴 때 풍경이나 정물을 한참 쳐다보다가 그림의 대상이 자기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일종의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감각적 세계를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세잔이 그렇게 비평가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화풍을 고집하며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가혹할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해 얻어낸 영혼의 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폴 세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견고한 구성과 대칭의 구도를 통해 카드놀이를 하는 두 인물의 긴박한 대립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온 우주는 색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나 자신도 색으로 되어 있다”, “마치 내가 끝없이 무한한 색채로 덮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바로 이 순간이네. 내가 그림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카오스 상태라고나 할까. 나는 내 그림의 배경 앞에 서서 몰아의 경지에 빠지고 마는 거야.”
– 세잔이 친구 조아생 가스케와 나눈 대화 중
세잔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채의 조각이며, 형태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뒤따라 인식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대상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화음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시인 신경림의 시 <낙타>에 등장하는 낙타처럼 세잔의 영혼은 그림 밖에 본 일이 없고, 그림만 그리다 살다 간 진정한 예술가였다.
20세기 회화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폴 세잔에게는 30여 년을 함께한 벗이 있었는데, 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에밀 졸라이다. 그 둘의 인연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잔이 다닌 중학교로 전학 온 에밀 졸라는 지독한 근시로 자주 친구들에게 놀림과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체격이 컸던 세잔은 그의 보호막이 되어주었고, 에밀 졸라는 고마움의 표시로 사과를 선물하곤 했는데, 훗날 세잔이 정물화에서 사과를 자주 그린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에밀 졸라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오히려 세잔은 문학가를 꿈꾸었으나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에밀 졸라는 자연주의 작가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고, 세잔은 화가가 된다. 그러나 졸라가 소설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면서 우월감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세잔의 그림을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된다. 세잔은 그런 졸라의 태도에 큰 실망을 했고, 서로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 조금씩 쌓이다가 1886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소설로 둘의 관계는 완전히 끝나게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화가가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화실의 작품 앞에서 목을 매 생을 마감하는 내용인데, 이를 받아본 세잔은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고 오해하게 된다.
그의 결혼 생활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 속에 십수 년간 동거만 이어오던 연인과 결국 결혼에 이르렀으나, 그 결혼마저 오래가지 못하고 이혼하게 된다. 이후 그는 고독한 말년을 보내다 67세의 나이로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고독 속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반복해 그려낸 것은 고향 액상프로방스에 자리한 생 빅투아르 산이었다.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세잔에게 그림이야말로 그의 유일한 구원이었고, 신이었으며, 성전이었다. 시인 릴케는 그런 세잔을 가리켜 “그는 그림이 아닌 종교를 그린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프랑스 남부 액상프로방스의 라벤더 향기가 날리는 곳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떠신지요?
홍성은 작가
시카고 한인 미술협회 회장
미술 심리치료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