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계 참전용사 면전서 모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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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인권 옹호 활동가인 네이선 필립스 앞에서 웃음을 띤 채 서있는 고교생.<유투브 켑처>

켄터키 코비턴 고교생들…학교측 “퇴학 등 조치”

켄터키주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인디언계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면전에서 “장벽을 건설하라”고 외치며 모욕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급속히 퍼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AP·로이터통신 등 언론에 따르면, 켄터키주 소재 코빙턴 가톨릭고교 학생들은 전날 워싱턴DC 링컨기념관 광장에서 열린 낙태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가 같은 장소에서 인디언 인권 옹호 집회를 하던 참가자들과 마주쳤다. 학생들이 맞닥뜨린 이들 중에는 네이선 필립스(64)도 있었다.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필립스는 네브래스카 북동부지역의 토착 원주민인 오마하족 원로로, 미국 내에선 인디언 인권 운동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CNN방송 영상을 보면 당시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인디언 전통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필립스를 비웃음 띤 얼굴로 응시했다. 이 학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같은 학교 출신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해당 학생과 필리스 주변을 에워싼 채 “장벽을 건설하라”고 외쳤다. 이들 역시 ‘MAGA’ 모자를 썼다. 필립스를 사실상 ‘이방인’으로 취급하며 모욕적인 언행을 한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공개된 다른 영상에서 필립스는 눈물을 훔치며 “나는 학생들이 장벽을 세우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는 인디언들의 땅이다. 장벽을 세울 이유가 없다”고 항변했다.그는 “나는 그 어린 학생들이 굶주린 이들을 돕는, 진정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쏟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이 영상들은 삽시간에 인터넷을 달구며 미국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학교와 지역 가톨릭교구는 공동 성명에서 학생들의 행동을 규탄했다. 이들은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며 조사 결과에 따라 퇴학까지 포함해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에 정치권도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이 퍼진 편협함과 증오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민주당의 인디언계 연방하원의원 뎁 하얼랜드는 자신의 트위터에 필립스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이라고 언급하면서 “학생들은 노골적인 증오, 결례 그리고 불관용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소속 조 마이어 코빙턴시 시장도 해당 영상에 대해 ‘끔찍하다’고 표현하면서 “우리 지역은 이제 편협, 종족 협박 같은 말이 떠오르는 곳이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내 기성 사회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같은 당 앨리슨 런더건 그라임스 켄터키주 국무장관은 학생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어른들, 이런 행동을 은근히 부추긴 이들에게 조언을 얻고 싶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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