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돌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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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선 목사

26년 전 성지순례를 하는 한 그룹과 함께 이스라엘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에 세워진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교회로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별이 멎은 곳에는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고, 그 옆 동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구유를 보았는데 나무로 만든 구유가 아니라 예상 밖으로 돌을 쪼아 만든 돌구유였다. 구유는 일반적으로 소나 말 등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그릇으로 큰 나무토막이나 돌을 길쭉하게 파서 만든 그릇이다.

금년은 전 세계가 Covid 19의 재해(災害) 때문에 코로나와 싸우며 세월을 보내는 사이에 한해의 끝자락인 세모(歲暮)와 성탄(聖誕)의 계절을 맞았으나 조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만들어지고, 전세(傳貰)의 난으로 서민들이 아우성치는 생존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간 잊고 살았던 아기 예수와 돌구유가 떠올랐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그의 복음서에 기록하기를 “맡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舍館)에 있을 곳이 없음 이러라(눅2:7)”고 했다.

우리는 가끔 비행기 안에서나, 병원으로 가던 차안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이야기는 들었어도 예수님처럼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는 경우는 들어 본적이 없는 초유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가끔 드라마에서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의 갑(甲) 질을 단죄하면서도 없는 사람과는 아무것도 나누지 않으려한다. 믿는다는 사람들마저도 성탄의 계절에 어리신 예수님을 위해 강박했던 베들레헴의 인심처럼 외면을 하고 그 무엇도 드리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살 전세의 난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구주로 이 땅에 오실 주님을 위해 태어나실 방 한 칸은 고사하고 작은 관심마저도 내어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서 베들레헴 사람들은 방 한 칸 내어놓은 사람이 없었으나 역설적으로 마구간의 말은 자기에게 준 먹이를 다 먹고 비워주므로 돌구유를 산실의 요람으로 내어 주었다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은 새로운 왕의 나심을 알고 찾아온 동방박사의 소문으로 크게 소동하면서도 외면했고, 메시아의 탄생예언을 성경에서 찾아 해롯왕에게 알게 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알고도 외면했으나 미물인 짐승은 구유를 제공한 결과가 되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현실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내어놓을 수 있으며,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고,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외친 천사의 소식은 어디에서 들을까? 점점 외로워지는 성탄의 계절에 텅 빈 베들레헴의 돌구유를 그려본다.(mymilal@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