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걸려오는 사기 전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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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힌 인도 뉴델리의 한 콜센터의 내부 모습.[뉴욕타임스]

■ 갈수록 기승 ‘전화 스캠’ 어디서 누가 거나
미국 성인 5명 중 1명 꼴로 사기 전화 받아
5,600만 명이 피해 입어 손실액 200억 달러
인도의 불법 콜센터들이 온상···단속 어려워

2019년 12월 어느날 오후 테네시주 크로스빌에서 홀로 살고있는 할머니 캐서린 랭거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그녀가 사용하는 컴퓨터 제조업체의 환불 부서에서 일했다고 밝힌 그는 컴퓨터 업체가 랭거에게 판매했던 안티 바이러스 및 안티 해킹 보호 플랜의 사용이 이제 중단되어 환불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화를 걸었다고 용건을 밝혔다.
따뜻하고 친절한 목소리를 가진 랭거는 그가 말하는 플랜을 구입한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했던 그녀는 인도 억양을 구사하는 로저라는 이름의 발신자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팀뷰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그녀의 데스크탑 컴퓨터에 접속한 후 발신자가 랭거의 은행에 로그인하여 그녀의 계좌로 이체할 환불액 399달러를 수락하도록 요청했다. “우리 시스템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 크레딧 카드로 돈을 환불하거나 체크를 우편으로 발송할 수 없다”고 이유도 밝혔다. 랭거는 두 차례 로그인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온라인 뱅킹을 그리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의 사용자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가 포기하려 하자 발신자는 컴퓨터 화면에 은행의 인터넷 뱅킹 등록 양식을 열어 새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를 만들어주었고 그녀의 주소, 소셜시큐리티 번호, 생년월일을 포함해 필요한 세부 정보를 입력하도록 요청했다. 랭거가 발신자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하자 그는 “컴퓨터가 신경 쓰이냐?”라고 물으며 PC를 잠가버리는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업로드해 그녀가 볼 수 없는 비밀번호로 화면 잠금을 해버렸다. 그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예전처럼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내가 말한 대로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컴퓨터와 돈을 잃게 된다”며 다음날 전화하겠다는 말을 남긴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몇 분 후 그녀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 발신자는 자신을 짐 브라우닝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온라인 뱅킹에 로그인하도록 설득하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그는 당신의 돈을 훔치고 싶어한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말했다. 랭거는 강한 아일랜드 억양을 가진 이 새로운 발신자가 그녀가 방금 나눴던 대화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그녀는 “이 집단에 속한 사람은 아닌 게 확실하죠?”라고 물었다. 그는 같은 사기꾼들이 그를 표적으로 삼았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녀에게 했던 것처럼 그의 컴퓨터에 원격으로 액세스하려 했을 때 역으로 그는 그들의 컴퓨터에 액세스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며 몇 주에 걸쳐 그는 그들의 컴퓨터에 들어갔고 사기꾼의 컴퓨터 스크린에서 액티비티 기록을 시각적으로 캡처했으며 랭거에게 했던 것과 같은 통화를 도청하고 녹음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PC는 매번 동일한 암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PC 잠금을 해제시키는 암호를 알려 드리겠다”며 “4-5-2-1을 입력하면 잠금이 해제된다”고 말했다. 랭거는 숫자를 입력했고 “컴퓨터 잠금이 풀렸다”며 안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랭거가 받은 것과 같은 전화는 짜증이나 불안의 원인이 된다. 연방수사국(FBI)의 인터넷 범죄 신고센터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가 보고한 총 손실액은 2017년 14억 달러에서 2019년 35억 달러로 증가했다. 지난해 ‘트루콜러’(Truecaller) 앱이 해리스 여론조사에 의뢰한 바에 따르면 약 2,000명의 미국 성인들 중 응답자의 22%가 지난 12개월 동안 전화 사기로 인해 손실을 입었다고 답했다. 트루콜러는 미국인 5,600만 명이 전화 사기로 피해를 입었고 손실액은 약 2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날 오후 랭거를 구해준 사람은 영국에 본사를 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짐 브라우닝’이라는 가명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정기적으로 자신이 콜센터들과 범죄 연루자들을 식별해 사기 피해를 막은 동영상을 게시하기도 한다.

2019년 가을 그가 뉴욕타임스와 스카이피(Skype)로 대화를 시도했다. 랭거의 경우와 같은 에피소드가 담긴 녹음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사기꾼들의 보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면서 그의 단속 행각을 계속하고 싶어했다. 익명성 유지는 사기 단속과 사기 행각에 똑같이 중요하기에 우리는 그를 그의 중간 이니셜 L로 지칭하기로 했다.

L은 지난 몇 년 간 저녁 여가시간을 거의 전화 사기꾼을 추적하는데 썼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해 3월과 4월 엄격한 봉쇄령이 내려진 몇 주는 예외였다. 이런 전화 사기행각을 벌이는 콜 센터도 일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했지만 10개월 후 전화사기는 “팬데믹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그가 말했다.

스캠 사기꾼을 추적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낸 타임스 기자는 남아시아 억양을 가진 발신자의 목소리를 이유로 사기 전화가 인도에서 걸려온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L은 스캠 사기꾼을 추적하기 위해 ‘가상 머신’ 연결방식을 활용했다. 사기꾼 컴퓨터의 IP 주소와 기타 단서를 통해 L은 콜센터가 있는 이웃, 경우에 따라 실제 건물까지 식별할 수 있다.

L의 이러한 에피소드 동영상은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그를 익명의 유튜브 스타로 만들었다. 그는 특정 콜센터에 대해 수집한 증거를 공유하기 위해 인도의 법 집행 당국에 이메일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메일 문의는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였으나 예외가 하나 있었다. 지난해 L이 인도 북부 델리 외곽의 구루그람을 소재지로 확인한 콜센터를 BBC가 방영한 취재 특집 이후 경찰이 급습한 것이다.

이런 특정 사기꾼과 같은 개인은 전화로 피해자를 조작하는 책임이 있지만 수십억 달러 규모 범죄 산업의 표면상 얼굴에 불과하다. “사기 행각을 벌이는 콜센터는 모든 유형의 하청업체를 고용한다”고 뉴델리 미국대사관에서 법무담당관으로 일하는 FBI 요원 푸 네트 싱이 말했다. 여기에는 전화번호 판매자들, 악성 소프트웨어 및 팝업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 불법자금 송금책 등이 포함된다. 사기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특성이 있다.

이같은 행각이 인도에서 번성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 델과 같은 많은 미국 기업들이 인도 근로자에게 고객 지원을 아웃소싱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 이후 국가의 합법적인 정보기술 서비스 산업이 성장한 배후와 거의 동일해서다. 선진국의 더 많은 회사들이 항공권 발권에서 은행에 이르기까지 원격으로 수행 가능한 다양한 서비스를 인도로 이전했다. 영어 구사가 가능하고 인구가 많은 인도가 인건비를 낮추었다.

대부분의 콜센터가 합법적인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콜센터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델리 근처의 사이버 시티 혹은 콜카타 근처의 솔트 레익의 섹터 V는 IT 산업 육성을 위해 건축된 수많은 상업지구 중 두 곳이다. 메탈이나 유리로 건축된 고층 건물의 미로 속에서 미국에서 항공 여행객의 문의를 처리하는 콜센터와 매일 수백명의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크레딧 카드 이자를 낮추기 위해 사기 제안을 하는 콜센터를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

경찰이 주기적으로 불법 단속을 한다 해도 사기 행각을 벌이는 콜센터를 탐지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기소 당할 가능성 역시 적다. 특히 인도의 경제가 둔화되면서 합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에는 자격 미달인 사람들 사이에서 사기는 마치 직업의 옵션이 되고 있다. 인도 교육기관은 매년 150만 명 이상의 엔지니어를 배출하지만 한 조사에 따르면 20% 미만의 엔지니어가 교육 관련 직종에 종사할 뿐이다. 교육을 받고도 직업을 갖지 못한 남녀 젊은이들이 생계비를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소그룹이 운영하는 콜센터가 주거 지역에 생기게 된다.<By Yudhijit Bhattacharj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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