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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October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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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광선 장로님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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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광선 장로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거주하셨던 안광선 장로님께서는 향년 76세로 2026년 10월 23일 소천하셨습니다. 고인은 1950년 8월 29일, 한국전쟁 중 대한민국 부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특별히 고인께서 소천하신 날은 사랑하였던 아내 고(故) 사효순 사모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맞이하셨을 76번째 생신이기도 합니다. 두 분이 평생 나누셨던 깊은 사랑과 변함없는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듯, 깊고도 가슴 아픈 우연입니다

고 안광선 장로님의 생애와 발자취

안광선 장로님께서는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안광선 장로님의 아버님께서는 서울에서 군 법무관으로 복무하고 계셨고, 어머님께서는 고인을 임신하고 계셨습니다. 전쟁으로 가족이 함께 지내기 어려워 지자, 아버님께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머님께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실 수 있도록 마련하셨고, 안광선 장로님은 부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후 아버님의 군 복무를 따라 부산, 대구, 서울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인께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강한 의지를 지니셨습니다. 특히 테니스를 무적 좋아하셔서 아버님께서 학업에 더 집중하기를 바라셨음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씩 연습하곤 하셨습니다. 학업에서는 처음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이를 자신의 한계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공부하는 방식을 바꾸고 도서관에서 밤 늦게까지 오랜 시간 학업에 매진하신 끝에 학업 성취를 크게 향상 시키셨습니다. 이러한 끈기와 노력으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여 지리학을 전공하셨습니다. 한국 곳곳을 여행하며 현장 조사를 하는 것을 즐기셨고, 도시와 지리, 도시계획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다.

대학교 시절에는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故) 사효순 사모님을 만나셨습니다. 두 분은 고인께서 군 복무를 하시는 동안에도 편지로 사랑을 이어 가셨습니다. 이후 사효순 사모님과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하셨고, 안광선 장로님도 뒤이어 미국으로 건너와 시카고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하시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고인과 사효순 사모님께서는 1977년 1월에 결혼하셨습니다. 두 분은 위스콘신주 레이크 제네바에서 신혼 여행을 즐기셨고, 데스플레인스에서 가정을 이루신 뒤 1988년 버팔로 그로브로 이주하셨습니다. 슬하에 세 자녀 안유진(신시아), 안유성(셜리), 안유정(리다)을 두시고 모두 사랑으로 양육하셨습니다.

미국에서의 고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끈기와 도전 정신을 잘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제조업체 생산라인에서 일하셨고, 이후 세븐일레븐에서 바닥 청소부터 시작하셨습니다. 매장의 여러 업무를 하나씩 익히며 결국 매장관리자가 되셨고, 자신의 사업을 운영할 가능성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간 근무와 여러 차례 겪으신 강도 사건으로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의 생계를 이어 가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고인께서는 더 나은 기회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직장과 사회에 막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던 시기에, 고인께서는 다시 한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영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으셨지만, 세븐일레븐에서 풀타임으로 일하시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니셨습니다. 학업에서 모든 과목 A학점을 받으셨고, 졸업생 중 유일하게 졸업 후 정규직으로 취업하며 보험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던 중 고인께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고인께서는 경영난을 겪고 있던 Albany 0ffice Supply라는 사무용품 업체를 알게 되셨고, 이를 인수하는 도전을 감행하셨습니다. 당시 사효순 사모님께서는 세 번째 자녀인 유정이를 막 출산하신 때였습니다. 사효순 사모님께서는 갓 태어난 유정이를 돌보시면서 매장 운영도 도우셨고, 고인께서는 보험회사 일을 계속하시다가 결국 Albany 0ffice Supply 운영에 전념하게 되셨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도전이었던 사업이 약 40년에 걸친 인생의 중요한 여정이 되었습니다. 고인께서는 거의 40년 동안 Albany Office Supply를 운영하시며 시카고 알바니 파크 지역에서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고 신뢰받는 분으로 자리 매김하셨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여러 세대의 어린이와 가족들, 지역 주민과 사업체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였습니다.

고인께서는 교회와 지역사회에도 깊은 헌신을 보이셨습니다. Northfield Presbyterian Church of Wheeling에서 장로로 섬기셨으며, 교회 건축 사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던디 로드 인근 윌링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 건축을 위해 위원회를 이끄셨고, 이후 윌링 로드와 펠러타인 로드 교차로에 세워진 두 번째 교회 건축에도 힘을 보태셨습니다.

고인께서는 본래 호기심이 많으셨고, 늘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기술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셨으며, 언제나 새로운 기술과 미래의 가능성을 찾아보셨습니다. 치아시드와 알칼리수처럼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새로운 제품과 아이디어를 접하고 탐구하시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고인을 기억하는 분들은 그분의 지혜로운 문제 해결 능력과 호기심, 낙관적인 태도,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기꺼이 도전하시던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020년 사랑하는 효순 사모님을 먼저 떠나 보내신 후에도 고인께서는 삶의 새로운 경험을 향한 여정을 이어 가셨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부산의 바닷가 주택에서 홀로 6개월 동안 생활하셨으며, 필리핀도 여행하셨습니다.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고 직접 경험하는 것을 즐기셨던 평생의 모습이 마지막까지 이어졌습니다. 고인의 삶은 희망과 용기,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유가족 현황

고인께서는 세 아들 부부, 안유진(신시아), 안유성(셜리), 안유정(리다)을 두셨습니다. 또한 자랑스러운 일곱 손주 “조시아(19세), E|모시(16세), 마티아스(14세), 벤자민(12세), 에밀리(10세), 사무엘(8세), 에반(8세)”를 두셨습니다.

고인께서는 43년간 사랑과 삶을 함께하신 아내 고(故) 사효순 사모님을 2020년에 먼저 떠나 보내셨습니다. 고인께서는 가족과 신도, 교회 공동체, 오랜 고객들, 그리고 76년의 생애 동안 인연을 맺고 삶에 따뜻한 흔적을 남기신 많은 분들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장례 및 추모 예배 안내
장례식
Colonial-Wojciechowski Funeral Home
8025 W Golf Rd
Niles, IL 60714

조문 및 추모 시간
2026년 10월 28일 수요일
오후 4시 – 오후 9시

장례 예배
2026년 10월 28일 수요일
오후 7시

추모의 글
고 안광선 장로님의 삶은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 했는지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태어나셨지만, 고인께서는 가족과 신앙, 일과 호기심, 모험과 희망으로 가득한 삶을 일구셨습니다. 고인께서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셨습니다. 전쟁의 불확실성 속에서 시작된 고인의 삶은 희망의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고인의 자녀들과 손주들, 그리고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모든 이들의 삶 속에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

안광선 – 1950년 8월 29일 – 2026년 10월 23일

<안유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