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 세상] 그 남자, 그 여자 ( Rust and Bone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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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김<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거의 매일 눈이 내렸던 지난 주.  넷플릭스 영화 목록을 훑다가 몇년 전 보았던 프랑스 영화가 새로 올라 온 것을  발견했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가진 것이라고는 건장한 몸뚱아리 밖에 없는 20대 후반의 남자 ‘알리’가 있다. 무식하고 직업도 없는 그는  다섯 살 짜리 아들 ‘샘’을 떠맡게 되자 그동안 살던 벨기에를 떠나  누나가 사는  프랑스 남부 지방 ‘안티베’로 건너 온다. 수퍼마켓의 임시 직원 으로 일하는 누나는 어린 조카와 동생을 받아들인다. 트럭 운전수인 매형도 불평없이 군식구를 맞이한다. 당장에 돈을 벌어야하는 알리는 킥복싱을 했던 이력으로 나이트클럽의 기도로 취직한다.

어느 날 밤 클럽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알리는  부상당한  손님 ‘스테파니’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  스테파니는  범고래쇼를 지휘하는 조련사이다.  범고래쇼 도중에 사고가 발생하고 스테파니는 두 다리를 잃는다.

알리는 돈을 벌기 위해 불법 도박 격투기에 참가한다. 맨 땅에서 보호 장치도 없이 두 주먹으로 짐승처럼 싸워서 상대를 때려 눕힌다. 피가 튀고 이빨이 부러지는 현장을 보며 사람들은 열광하고 돈을 건다.  얻어맞은  댓가로  겨우 500 유로를 받아서 누나에게 나눠주고 아들 장난감도 사준다.

스테파니가  알리에게 전화를  한다.  알리는 사고 후 집에서만 지내던 스테파니를 바다로 데려가고 그녀는 수영을 하면서 자유를 느낀다. 알리는 시간이 날 떄마다 스테파니를 외출시킨다. 어두운 실내를 벗어나 밝은 세상과 접하면서 스테파니는 자기 연민과 절망속에서 조금씩 빠져 나온다. 알리는  돈을 벌기 위해 격투기를 계속하다가 복싱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깨닫는다.  알리와 스테파니 사이에 묘한 우정이 싹튼다. 단순하고 동물적인 알리는 만나는 여자들과 사랑없는 육체 관계를 가져왔다.  알리는 두 다리가 없는스테파니와도 별 생각없이 몸을 나눈다. 원하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문자를 보내라는 그의 태도는 솔직하고 가식이 없다.

지성적이고 자존심 강한 스테파니는  자신과 정반대인 이 남자가 좋아진다.  스테파니는 알리의 격투기 현장에도 동행한다.  땀과 피가 범벅이 되어 죽기로 싸우는  알리의 모습을 지켜본다. 의족을 하고 걸을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알리의 후견인 역할을 자청해 남자들뿐인 싸움판에서 내기 돈 걷는 일까지 맡는다.  스테파니가 씩씩하게 운명과 맞서서 나아가면서 두사람 사이에 사랑이 시작된다.  스테파니는 방종하고 무책임한  알리의  태도에

상처받고 실망도  한다. 누나가 직장에서 해고되고 말싸움이 나면서 알리는 아들을 놔둔 채 집을 나간다.  알리는 지방의 킥복싱 훈련소에 입소해서 훈련을 받는다.  오랫동안 소식도 없이 지내다가 매형에게 연락해서 아들이 보고싶다고 한다. 매형은 아들을 데려다 준다. 추운 겨울 꽁꽁 언 강에서 놀던 아들이 얼음이 갈라지면서 물속에 빠진다. 알리는 온힘을 다해 주먹으로 빙판을 내려치고 겨우 아들을  꺼낸다.  홀로 병원에서 아들이 깨기를 기다리던 알리는 스테파니의 전화를 받는다. 외롭고 두려웠던 그는 스테파니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의 무신경과 이기심을 고백하고 비로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본능에 충실한 야수같은  남자는 몸뚱이를 밑천으로 먹고 산다. 책임감, 배려, 절제, 약속같은 것은 그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다가 두 다리를 잃은 여자를 만난다. 동정이나 친절은 아닌데 왠지 그녀를  부추겨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한다.  내일의 희망이 없는 두 남녀가  차디찬 길바닥에 내팽겨졌다가 서로를 의지하고 조금씩 회복해 가는 과정이 사실적이고 가슴이 먹먹하게 그려진다.  둘이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처절하고도 눈물겹다. 자칫 신파조로 흐를 수 있는 소재를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투박하고 진실되게 보여준 감독의 역량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의 밑바닥에서 그래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명제를  생각하게  한다.  배우들의 열연이 뛰어나고 스테파니의 절단된 하체, 범고래쇼,  격투기 시합등  생생하고 유려한 촬영,  아름다운 음악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