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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시선) 잊혀가는 시카고 코리아타운, 무엇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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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당시 발행된 시카고 한국일보 지면.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미주 한국일보>

로렌스길의 역사 보존 넘어 시니어 지원·세대 교류 구체화해야… 한인단체 공동 실천이 관건

미국의 주요 도시마다 코리아타운이 있다. 그곳은 단순히 한국 음식과 문화를 즐기는 장소가 아니다. 이민 1세대가 낯선 땅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서로 의지하며 새로운 터전을 일군 역사의 현장이다. 시카고의 코리아타운 역시 한인 이민자들의 땀과 애환이 쌓인 소중한 공간이었다.

초창기 한인 이민자들은 클락길을 중심으로 정착하기 시작했고, 이후 로렌스길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한인 상점과 식당, 각종 비즈니스가 모여들면서 이곳은 한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중심지가 됐다. 훗날 ‘서울 드라이브’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시카고 한인사회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당시 로렌스길은 단순한 상업지역이 아니었다. 영어가 서툴고 미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들에게는 정보를 얻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안전망이었다. 특히 한인 시니어들에게는 한국어로 의사소통하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며 이웃과 교류할 수 있는 소중한 생활 공간이었다. 한인 의사와 상점, 각종 서비스가 가까이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낯선 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과 고립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한인들의 거주지는 시카고 북부와 서북부 교외 지역으로 확산됐다. 생활권이 바뀌고 상권도 이동하면서 로렌스길의 코리아타운은 과거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많은 한인에게 추억 속의 장소로 남아 있지만, 그곳에 담긴 역사와 의미마저 잊혀져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시카고 한인사회에 묻고 싶다. 코리아타운이 쇠퇴하는 모습을 그저 시대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지나쳐도 되는가. 이민 1세대가 일군 터전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상점 몇 곳이 문을 닫는 문제가 아니다. 한인사회가 어떻게 형성됐고, 어떤 어려움을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기억의 공간이 사라지는 일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한인 시니어들의 고령화와 은퇴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이들을 위한 공동체의 역할이 충분히 논의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한인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 토대를 마련한 세대의 노후와 사회적 고립을 외면한다면, 공동체의 미래 역시 온전할 수 없다.

코리아타운의 역사 보존도 구체화해야 한다. 로렌스길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했거나 이민 초기부터 이곳을 지켜온 한인들의 구술 기록을 수집하고, 옛 사진과 신문 기사, 상점 간판 등을 디지털 자료로 보존하는 작업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한인회와 문화기관이 공동으로 자료를 정리해 온라인 역사 자료실을 만들고, 가능하다면 현지 상점이나 공공기관과 협의해 역사 안내판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거창한 기념관을 세우기에 앞서 남아 있는 기억부터 기록해야 한다.

세대 간 교류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차세대 한인들이 시니어들의 이민 경험을 인터뷰하고 영상으로 기록하도록 하고,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스마트폰 사용과 온라인 의료 예약, 각종 공공서비스 이용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시니어들은 이민의 역사와 삶의 지혜를 전하고, 젊은 세대는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나누는 상호 교류가 이뤄진다면 세대 간 거리도 좁힐 수 있다.

코리아타운의 미래가 반드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지녔던 공동체 정신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이어가는 일이다. 한인 시니어를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인사회를 일군 주역이자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구성원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민 1세대가 일군 코리아타운의 역사는 그들의 노후와 함께 사라져서는 안 된다. 로렌스길의 역사를 기록하고, 시니어의 일상을 지원하며, 차세대가 그 유산을 이어받도록 하는 일은 어느 한 단체만의 몫이 아니다. 한인회와 종교기관, 문화단체, 기업, 젊은 세대가 각자의 역할을 나눠 실천해야 한다. 공동체의 성숙함은 얼마나 성장했느냐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한 세대를 얼마나 기억하고 존중하며, 그 책임을 행동으로 옮기느냐에 달려 있다.

<이점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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