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개방된 새로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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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인간이 갖게 되는 생각 중에 쉽게 접근하게 되는 것을 자아 (自我=ego) 라고 하나보다.    그런데 자아라는 것은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는 게 아니다.  심리학적인 견해로는 이를 정신 세계 속에서 찾아내고 있다. 누구나가 갖고 있는 정신 세계란 것이  모두가 동일하다면, 소통에도 수학적인 공식이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소통의 방법(Method)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의 다름이란 게 여기서 부터 출발인듯 하다.

    인간이 서로 다름이란 걸 인정을 하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란 단어를 찾아 낼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알기 위한 공부를 해야만 한다. 누구나가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 폰으로 모든걸 다 찾아 볼수있는 편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아는자와 모르는 자로 구분되어진다.  이를 아는 자는 꾸준히 새로운 세상과 소통을 이루며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배움을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면,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을 한다.  누군가와 대화 중에 이드(id), 에고 (ego), 또는 초자아(超自我=super-ego) 란 말을 듣게 되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게 된다.  전문적인 듯 한  단어들이 우리 일상 속으로 쉽게 들어 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뭐든지 알아야 한다. “ 아는게 힘이다.” 라고 하지만, 이제는 “ 알아야 소통이 가능하다. “  라는 의문을 되새겨야 할 때인듯 하다.

    이드(id)라는 것은 본능적인 충동을 의미한다고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정의 한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빵을 훔친 것은 대표적인 이드(id) 현상이 아닐까 한다. 배가 고파서 무얼 먹어야 한다는 생각만 갖게 되면 그것은 동물적인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자아(ego) 라는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죄책감이란게 생기게 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도덕적인 감정과 양심의 가책을 갖게 된다. 이 때 이를 가리켜서  초자아(超自我=super-ego) 라고 칭하는 거다.  이렇게 세가지로 구분을 한것이 프로이드가 찾아낸 인간의 정신세계인 것이다.

    이상의 세가지가 조화롭게 이루어져있는 사람은 자아정체성이 옳바르게 있기에  건전한 사회속의 건전한 일원이 되는 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조화롭지 못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부부관계 라든가, 부모와 자식간이라던가. 이웃과의 관계, 친구관계 등등에서, 주체적인 자아만 볼 줄 알지, 객체적인 자아는 전혀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자기만 알지 상대의 생각은 고작 10% 정도만 알고서는  많이 아는 걸로 착각들을 한다.  이렇게 이기심 ( selfishness )  이 강한 사람과는 친분을 맺지 않는게 좋다.

   페이스북 (facebook ) 은 전세계적으로 이용자가 많다고 나와 있다. 허나 나이든 노년들은 카카오 톡을 선호하고 있다.  한국의 카카오톡은 이미 페이스북을 능가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는 통계 수치를 본 적이 있다.

  점차적으로 가상의 세계는 확산이 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로 변화가 되는 모습이다. 이 변화의 물결을 잘 만 이용을 하면 외로움이라던가, 고독이라던가에서 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다.  평생교육 이란게 어디를 꼭 가서 듣고 보는 세상은 아니란 거다.  집에서도 컴퓨터나,  스마트폰만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란 거다.  차가운 디지털 문화가 보편화 되는 만큼, 따뜻한 인간의 정을 갈구하는 세상으로 변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얻는 만큼 잃게 되는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