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28)…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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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병원 온콜하는 저녁. 환자를 보기 위해 CCU(Clinical Care Unit) 병실로 향했다. 병실 분위기는 언제나 무겁고 어두운 조명이 무게를 더한다. 방문 환자는 50대 중반 독신 남자다. 환자 침대 옆 의자에 한 여인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부인일까?’ 짐작했지만 사실은 환자의 누나였다. 환자는 약에 취해 깊은 잠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 환자의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자는 젊을 때부터 몸이 약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간간히 일을 했지만, 그마저 술을 마셔 번 돈을 탕진했고, 술로 인해 건강과 직장을 모두 잃고 결국 노숙자가 되었다. 극빈자로 지내며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응급실로 실려와 치료를 받았다. 모든 병원 비용을 책임지는 것은 국가였다. 일년에 6개월 정도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했고, 그때마다 동생의 병 수발은 누나의 몫이었다. “응급실에 실려올 때마다 이번엔 더 이상 가망이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질긴지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며 살아오기를 20년이 되어간다.”고 했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게 보낸 세월로 이제 60이 다 된 누나는 동생 돌보느라 결혼을 하지 못했다. 왜 결혼하지 못했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났는지를 물으니 그런 인연이 있기는 했었지만, 환자인 동생을 돌봐야 하는 그녀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없었단다. “이렇게 살아온 삶이 ‘후회’되거나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느냐?” 물으니 “그렇지는 않다.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눈가에 맺히는 이슬은 숨길 수가 없었다. 왜 아쉬움이 없을까? 지금이라도 남은 인생 멋지게 살고픈 마음이 문득 떠오를 때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그녀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가벼워지지 않음을 어쩌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안 마음 아파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 그녀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기도했다. 마음이 아려서 병실을 떠나기 전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어느덧 두 여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누군들 그런 삶을 살고 싶었을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주셨는데, 역경과 고통 속에 희생하며 한 세월 보냈으니 억울하기도 하련만… 그들의 삶에 내 자신을 비추니 ‘비록 오늘이 힘들고 두려운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꿈을 이루는 훈련 과정이요, 소망 있는 삶이라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닥친 고난이나 죽음이 남은 이에게는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듯이 우리는 모든 사람을 통해 배운다. 과거의 상처, 현재의 불만, 미래의 염려가 존재를 엄습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서는 것뿐이다. 그러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깊은 섭리는 무엇일까? 묵상해 본다.

바람부는 계절 탓일까? 요즘 왠지 모를 우울감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즐겁지가 않고 오히려 슬프다. 누가 툭 건드리면 금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꿈과 희망을 향해 달려가는 젊은이들 보다는 늘 ‘환자’, ‘죽음’, ‘육신의 아픔’과 ‘마음의 상처’, ‘영혼의 피폐’로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고, 살아온 날수 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과 더불어 사는 데서 오는 직업병인가?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가진 것이 많고 감사할 것은 더욱 많음을 발견한다. ‘현실이 감정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현실을 좌우’한다고 한다. 사소한 것에 욕심내지 말고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에 열정을 쏟아 하루하루 성실의 열매를 맺자. 꿈이 이루어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꿈을 쫓는 여정 속에 행복이라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오늘도 호미 하나 손에 쥐고 땀 흘려 일상 속에 숨겨진 행복이라는 보화를 캐내 보자.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