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5년만의 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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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을 찾아 꽃다발을 받은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로이터>

9일 실시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다.

윤 당선인은 10일(한국시간) 오전 3시 50분께 98% 개표를 완료한 가운데 48.59%, 1천604만표를 얻어 사실상 당선을 확정 지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0일 “밤이 아주 길었다”고 대선 승리 소감을 밝혔다.

윤 당선인은 “오늘 이 결과는 저와 국민의힘, 안철수 대표와 함께한 국민의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위대한 국민의 승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이날 대선 승리가 확정된 뒤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당 개표상황실을 찾아 “함께 애써주신 국민의힘 당직자, 의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참 뜨거운, 아주 열정적인 레이스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7.80%, 1천578만표를 얻었다. 득표차는 0.8%포인트, 26만 표에 불과하다.

개표 중반까지 이 후보가 우세한 흐름을 보였지만 개표율 51% 시점에 윤 후보가 처음으로 역전하면서 0.6~1.0%포인트의 격차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개표율 90%를 넘어설 때까지도 당선인을 확정 짓지 못하는 초접전 양상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모든 것은 다 저의 부족함 때문이다. 여러분의 패배도 민주당의 패배도 아니다.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며 “최선을 다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헌정사상 최소 득표 차를 기록한 신승이다.

1∼2위 후보 간 격차가 가장 작았던 선거는 1997년의 15대 대선이었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40.27%의 득표율로 38.74%를 얻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상대로 신승을 거뒀다. 표차는 39만557표, 득표율 차는 1.53%포인트였다.

두 번째로 격차가 작았던 선거는 1963년 5대 대선으로, 당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가 윤보선 민정당 후보를 1.55%포인트 격차로 눌렀다.

이번 대선이 유력한 제3후보가 없는 가운데 사실상 보수와 진보의 일대일 구도로 치러지면서 진영결집이 극대화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이념 갈등뿐만 아니라 세대·젠더 갈등까지 사회갈등의 골을 깊어진 것은 새 정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극심한 여소야대 의회지형 속에서 ‘협치’와 ‘통합’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민심이 표출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궤멸 위기로까지 내몰렸던 보수진영으로선 이번 대선으로 5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이로써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로 보수와 민주 진영이 10년씩 번갈아 집권했던 ‘10년 주기론’은 깨지게 됐다.

2년째 장기화하는 코로나19 사태가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되레 집권세력 심판론으로 민심의 무게추가 쏠린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 본인으로서는 ‘장외 0선’ 출신으로서 처음으로 대권을 거머쥐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작년 6월 29일 정권교체를 기치로 내걸고 정치참여를 공식화하며 대선도전을 선언한 지 불과 8개월 만이다.

앞선 13∼19대 전·현직 대통령들이 국회의원직을 최소 1차례 이상 경험했고 대부분 당대표까지 역임하며 여의도 정치에서 리더십을 인정받은 것과 달리, 의회정치 경력이 전무한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 파격 발탁된 ‘엘리트 검사’로서 되레 정권교체의 기수 역할을 맡은 것도 역설적이다.

무엇보다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출범한 진보정권을 교체하면서 정치·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분야에 걸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윤 당선인은 10일 오전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당선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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