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사랑이란 이름으로 (Love in the Time of Cholera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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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kim

조이 김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첫 사랑을 가슴에 품고, 평생 그 또는 그녀만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지순한 사랑이라고 하기엔, 당사자에게 가혹하고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19세기 말, 남미 콜롬비아의 항구 도시. 순진한 청년  ‘플로렌티노’는 전보를 배달하다, 노새 상인의 아름다운 외동딸 ‘페르미나’에게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집니다. 그 후로 끊임없이 연애 편지를 보내고, 바이얼린으로 세레나데를 연주하며,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모든 정성을 다합니다. 결국 페르미나의 마음이 움직이고 둘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 합니다.

 

하지만 둘 사이를 알게 된 페르미나의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고, 딸을 데리고 친척들이 사는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갑니다. 그렇게 떨어져 지내도, 플로렌티노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페르미나에게 전보를 보내면서 그녀를 기다립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마을로 돌아 온 페르미나는 플로렌티노와 우연히 재회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는 그에게, 자신들의 사랑은 진실이 아닌 환상이었다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실연을 당한 플로렌티노는 어찌해야 할 지 모릅니다. 괴로움으로 비참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 사이에 페르미나는 멋지고 부유한 의사를 만나 결혼하고, 신혼 여행을 겸해서 유럽으로 떠납니다.

 

도무지 삶의 의욕이 없는 아들을 걱정한 어머니는, 육감적인 젊은 과부를 아들의 방에 넣어 줍니다. 성적 쾌락에 눈을 뜬 플로렌티노는, 그 때부터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이 없는 섹스를 합니다. 페르미나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간직한 채, 섹스를 고통을 무마하는 진통제로 사용합니다. 삼촌의 사업을 돕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연애 편지를 대필해 주는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페르미나의 삶을 멀리서 지켜 봅니다. 페르미나는 남편과 가정에 충실하며 아내로서의 책임을 수행합니다. 도중에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지만 정리하도록 충고하고, 결혼생활을 지켜 나갑니다.

 

그렇게 50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그 동안 플로렌티노가 상대한 여자들의 숫자가 620명이 넘어 갈 무렵, 페르미나의 남편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납니다. 그 소식을 듣자 한 걸음에 그녀를 찾아가서, 처음 본 날부터, 51년 9개월 4일 동안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하면서 기다려 왔음을 고백합니다. 페르미나는 화를 내고 그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변치않는 사랑에 마음을 열게됩니다. 칠십을 훨씬 넘긴 인생의 황혼기에, 흰 머리와 주름 가득한 얼굴, 굽은 허리를 하고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사랑을 확인합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툭하면 콜레라가 휩쓸던 19세기 말과 막 20세기에 들어 선 콜롬비아가 배경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도시와 시골, 항구와 시장 풍경들이 화려한 색감의 수채화처럼 곱고 유려합니다. 영화에 삽입된 샤키라의  노래 “Despedia”도 아주 좋습니다. 샤키라 특유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영화 마지막에 두 사람이 처음으로 몸을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노인이 되어서 육체의 매력도 기력도 다 소진한 후에, 오직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한 몸이 되는데,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 플로렌티노의 반 세기를 뛰어넘는 한결같은 사랑이, 과연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랑 없이도 다른 여자들을 품는 플로렌티노를 요즘의 윤리적, 종교적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바람둥이에다 애정 결핍 환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 남미의 사회상, 서민들의 삶과 애환, 상류층의 애정관, 자연 풍광들이 섬세합니다. 독특한 연애 소설 한편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읽은 느낌입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갈등, 집착, 미련, 후회 등은 현재를 사는 우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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