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리를 좇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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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1725년 영국 런던, 한 선장의 가정에 사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엄마는 아기가 목사가 되길 바라며 말씀과 기도로 양육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이가 7살도 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후 소년의 삶은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사고뭉치 아들이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에 11살 되던 해에 자신의 상선에 태워 항해 일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더 악해져 갈 뿐이었습니다. 결국 18살되던 해 군인에게 체포되어 해군에서 운영하는 노예선을 타게 됩니다. 군대의 엄한 군기도 청년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계속 말썽을 부리자, 노예선의 대장은 2년 후 청년을 서아프리카에 거주하는 노예 딜러에게 버리고 갑니다. 청년을 구해준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간신히 구출되어 영국으로 돌아오던 청년을 이번엔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져주셨습니다. 극심한 풍랑으로 배가 거의 침몰할 지경이 되자, 청년은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살려달라고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회개의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기도하는 동안, 화물 하나가 굴러떨어져 배의 뚫린 밑창을 막아줌으로 배는 기적적으로 위기를 면합니다. 영과 육이 동시에 살아난 기적을 체험한 겁니다. 1748년 3월 10일에 일어난 대회심 사건입니다. 그후 청년의 삶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진리를 좇기 시작한 겁니다.

1750년 결혼 한 청년은 노예선 타는 것을 포기하고 리버풀 항구의 조세원으로 취직합니다. 그리고 저녁 시간 대부분을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는데 투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원어로 읽고 싶어진 청년은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의 영성이 깊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청년에게 목회의 길을 권유했습니다. 깊이 기도하던 청년은 하나님의 콜링을 깨닫게 됩니다.

목회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실패를 거쳐 1764년 그의 나이 39세에 목사가 됩니다. 엄마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진 겁니다. 목회자가 된 후 그는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80이 넘어 기억력이 흐려지고 시력이 약해질 때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젠 그만해도 된다는 주변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두 가지 사실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는 내가 과거에 엄청난 죄인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날 버리지않고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목숨이 다할 때까지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또한 그는 많은 신앙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경우가 윌리엄 윌버포스입니다. 25세 되던 해 예수님을 만난 이 젊고 유망한 정치가는 정치를 집어치우고 하나님의 사역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언을 구하고자 당시 60이 된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대화 후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이 영국을 위해 헌신하도록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훌륭한 정치인이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만남 후 윌버포스는 정치의 장으로 돌아가 노예 제도 폐지를 위해 평생 헌신했고, 결국 그 뜻을 이뤄냅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삶 전체를 드린 그는 82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에 안깁니다. 그의 묘비명은 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God’s Clerk).” 이 분이 바로 찬송가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의 찬송시를 지은 존 뉴턴입니다.

우리 모두, 존 뉴턴처럼,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하며 평생 진리이신 예수님을 좇는 자가 되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