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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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 나눔교회 담임)

가족을 뜻하는 Family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 영어단어 첫 글자를 새롭게 합성하여 만든 Family는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을 사랑 합니다’라는가족 사랑을 뜻합니다. 서로 위로 해주고 힘이 되어주며 오랫도록 곁에 있어 주기만 해도 든든한 공동체이다. 이런 아름다운 가정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 가정이 프레드 밀러 선교사이다.

프레드 밀러 (Frederick S. Miller)선교사는 1866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태어나고 피츠버그 대학과 유니언 신학교를 졸업한후 1892년 11월 15일, 아내 안나 밀러(Anna R. Miller)와 함께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았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던 밀러 가정에 첫 아들 프레드 밀러(Miller, Fred)가 1898년 11월 7일 출생 했지만 8개월만에 사망하게 되었고 둘째 아들 프랭크 밀러(Miller, Frank,)역시 1902년 3월 7일 출생한지 하루만에 사망 하였다. 1년후 사랑하는 아내 안나 밀러도 1903년 6월 17일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조선 사람들이 왜 “당신이 전하는 예수가 누구기에 이렇게 당신을 힘들게 하는 하는 거요?” 그들의 물음에 선교사는 대답 대신 찬양을 지어 부르며 고난을 원망의 대상이 아닌 감사로 노래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를 작사하였고 그외 “주의 말씀 듣고서”, “맘 가난한 사람”, “예수 영광 버리사”, “공중 나는 새를보라” 5곡이 현재 부르는 찬송가에 수룩되어 있다.

그는 음악적 재능이 탁월하여 한국 최초로 장로회와 감리회가 연합하여 찬송가 집을 발행할때 편집에 참여 하였으며 한국인에 맞는 찬송가 편집에 큰역할을 하게 되었다. 문학에 조예가 깊어 조선(한국) 선교 역사상 어떤 선교사보다 많은 문서를 남겼다. 그는 문맹 퇴치를 위하여 순수 한글로 된 금주, 금연, 사회 계몽 운동을 전도지를 통하여 제작 배포하는 문선 선교에 힘썼다.

그의 선교 사역은 경신의 전신인 민로아 학당과 연동교회 초석을 놓았고 30년간 충북에서 기독교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가 처음 내한하여 경신학교의3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교 이름도 민로아 학당으로 고치고 실용적인 교육을 발전 시켰다. 선교와 교육에 힘썼던 그는 선교 보고서에서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있다.

“소년들을 가장 유익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에게 언문과 성경, 그리고 서양 학문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도찬 안창호 선생도 밀러가 학당장을 하던 시기에 17세에 학당에 와서 공부를 하며 예수를 믿게 되고 후일 민족 운동을 하다가 심문을 받을때에도 민로아 학당에 입학 하였노라고 할만큼 큰영향을 받은곳이다. 밀러는 충북 땅에 처음으로 조직교회, 청주제일 교회를 시작으로 청남학교, 청신여학교, 청서학교, 청북학교 등 여섯개 학교를 세워 근대교육도 실시했다. 1937년 10월 6일 71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는 충청지역 선교와 교육, 서양문화 보급에 온 힘을 다했다.  밀러 선교사에 대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대홍수로 백성들이 고통 당할때 자신의 집을 개방해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건네고, 위로하는 사랑의 사도이며 그는 문서 선교사요, 교회개척 선교사요, 음악적 감각이 뛰어난 음악 선교사이기도 하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며 복음의 씨를 뿌렸던 사랑의 흔적을 늘 기억 될것이다.

참고: 연동교회 100주년사, 한국교회사, 충북선교 100주년, 양화진의 선교사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