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인포데믹’···위독설에 5시간여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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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수술 후 중태” 긴급 보도
김정은 태양절 행사 불참 후 잠행이 발단
각국 촉각···한국 금융시장 한때 출렁
청와대 “특이동향 없어, 정상활동” 진화
전문가 “정보 접근 안돼 생긴 해프닝”

2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술 후 중태에 빠졌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한미 정부가 사실 확인에 나서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정부는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다”고 일축했지만 한때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등 여파가 계속됐다. 결국 미국 CNN 첫 보도 5시간 만에 청와대가 “김 위원장은 지방에 체류 중”이라고 확인하면서 상황은 정리됐다. 신빙성 낮은 정보가 와전되면서 벌어진 ‘해프닝’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 같은 북한 변수가 여전히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는 씁쓸함도 남겼다.

소동의 시작은 이날 오전 10시30분 CNN 긴급 보도였다. CNN은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중태(in grave danger)에 빠진 상태라는 정보를 미국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국내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가 20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최근 심혈관계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했고 정부가 부인한 직후였지만 국내외 언론들은 CNN 보도를 긴급 타전하며 정부 당국에 확인을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에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전례가 있다. 또 지난 11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참석 이후 공개 활동을 하지 않고, 매년 참석하던 15일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행사에도 빠지면서 의문이 증폭된 상황이었다. 김 위원장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8년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했는데 나중에 뇌졸중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진 것도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을 부추기는 요인이었다. 북한 지도자들이 중요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는 건강에 이상 신호가 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데일리NK는 전날 보도에서 “김 위원장이 12일 평안북도 묘향산지구 내 김 위원장 일가 전용 병원인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인근 향산(묘향산) 특각(별장)에 머물고 있다”며 상세한 시술 정황까지 전한 상황이었다. 청와대, 국가정보원, 통일부, 국방부 등은 CNN 보도 후 일제히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북한의 특이 동향은 파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 건강 이상 우려가 확산되면서 코스피가 장중 한때 전날보다 2.99% 내린 1,841.66까지 떨어지는 등 주식시장까지 충격 여파가 미쳤다.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이 일파만파 퍼지자 각국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정부가 김 위원장이 지난주 심혈관계 수술을 받은 후 위독한 상태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의 건강에 관한 세부 내용을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다만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김 위원장의 현재 상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CNN도 이날 오후 관련 기사 내용을 보완하면서 다른 미 정부 관리가 “김 위원장의 건강에 관한 우려는 신뢰할 만하지만, 그 심각성은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보도를 봤지만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기자회견에서 “미국 등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싶다”고만 언급했다.

결국 이날 소동은 청와대의 진화로 5시간 만에 일단락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3시쯤 “김 위원장은 현재 측근 인사들과 지방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북한의 노동당, 내각, 군부 어디도 비상경계 같은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등 건강이상설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특이 동향도 없다. 김 위원장이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관련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현재 머물고 있는 지역도 데일리NK가 보도한 묘향산 근처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소통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관계자도 비슷한 시간 로이터통신에 ‘김 위원장이 현재 위독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잠행’은 이례적이지 않다. 집권 후 한 달 이상 대외활동을 멈춘 적도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외신들도 한국 언론의 보도나 지라시 정도의 정보를 바탕으로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최근 국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김 위원장이 뇌사 상태라고 주장하는 ‘지라시’가 다시 확대재생산 됐고, 대북매체의 보도가 나오면서 관련 정보가 와전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15일 태양절 행사에 불참한 뒤 일부 전문가가 건강 이상설을 제기했고, 이후 국내 탈북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014년 가짜뉴스로 판명됐던 지라시가 수정돼 재확산되면서 사태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날 소동을 ‘북한에 대한 낮은 정보 접근성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봤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의 건강 정보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정도가 아니면 접근 불가능한 정보”라며 “김 위원장도 사람이니 건강에 이상이 있을 수 있지만, 북한의 일반 주민들(소식통)이 단편적으로 전해오는 주장을 사실로 예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 건재를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나서 ‘지방 체류 중’이라는 고급 정보를 전한 것도 아쉬웠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입장에선 정보 능력이 노출됐고, 북한 입장에선 최고 지도자 동선이 드러나는 기분 나쁠 수 있는 정보 확인 상황이기 때문이다.<김지현·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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