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늘 첫 한인 기록···2·3배 더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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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으로서 백악관 경호실 총책임자까지 오른 데이빗 조씨.

백악관 경호실 최고위직 데이빗 조 씨
1995년 첫 출발, 1천여 경비병력 총지휘

“한인이라 남보다 2배, 3배 더 일했습니다”

한인 데이빗 조 백악관 경호실 총책임자의 말이다. 그는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 대통령을 바로 곁에서 초밀착 경호를 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호실 2인자였다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함께 1,000명 가까운 백악관 경호실을 총지휘하는 1인자로 승진했다.

정년을 앞두고 이달 말 퇴임을 결정한 그는 지난 17일 백악관 행정동인 워싱턴 DC 아이젠하워 빌딩 내 정원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1995년부터 백악관 경호실 근무를 시작한 이래 최고위직에 오른 이후에도 한 번도 없었던 첫 인터뷰다. 조씨는 “미국의 한인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한다”며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밝혔다.

조씨는 자신의 임무에 대해 “대통령과 직계가족에 필요한 요원들 뿐만 아니라 백악관 경비에 필수인 정복 경호원 모두를 지휘 감독한다”고 설명했다. 그 숫자가 거의 1,000명에 달하는데, 이 자리에 오르기 까지 총 6번의 진급을 거쳤으며 그때마다 첫 한인 또는 첫 아시안이라는 기록이 따랐다고 한다. 일반 경호직 공무원으로는 경호실에서 최고 위치에 오른 것이다. 그는 “더 오를 수 있는 자리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행정직인 경호실장과 부실장직인데, 나는 경호원으로서의 정년 때문에 은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씨는 3세 때인 1974년 미국에 이민 와 일리노이주에서 어렵게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일리노이 대학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화학공업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펜싱 선수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미국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기도 했었지만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아픔이 있다. 이후 1995년 조지아주의 경호학교를 졸업하고 연방 의회에 배치됐다가 시카고의 백악관 경호실 지부에서 2년 근무한 뒤 경호학교 교관을 거쳐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 입성했다.

조씨는 구체적인 대통령 경호 현장 임무에 대해서는 업무 보안상 말을 아꼈지만, 정치 시스템과 언어 차이가 큰 러시아와 중국 관련 경호를 할 때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그는 “세 번의 무릎부상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 하나, 그리고 한인이기 때문에 또는 한인이라서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기 위해 남보다 2배, 3배로 열심히 일했다”며 “항상 내 자신이 최상의 경호원이 되고자 했고 한인의 능동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경호실 내에서도 인정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백악관 은퇴 후 뉴욕의 투자회사인 시타델사의 경호책임자로 이직하는 조씨는 26년의 공직생활에서 돌아보며 아쉬운 점에 대해 “나의 꿈이었던 외교관을 못한 점과 내셔널 국방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점”을 꼽았지만 “부모님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립학교에 보내주시는 등 가정교육에 큰 힘을 쏟아주셔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제프 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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