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민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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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봉(시카고한미상록회장)

얼마 전 나는 노인들의 걱정거리 그 첫째가 자녀들에 관해서란 정의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 왔으면서도 이처럼 정의를 내리지 못했기에 벗어나는 방법도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는 고백도 더해야 갰군요.

노인들! 자녀들의 결혼적령기를 넘기게 된 노인들의 고민은 대게가 아닌 측 하지만 자녀결혼에 대한 염려가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의 그 절정에 달해있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혼자 사는 독거(獨居)의 외로움도 견뎌내기 힘들법한 노인도 있었지만 자녀의 혼사에 혼신을 다 쏟아 부을 듯합니다. 또 자신의 결혼도 아닌데 자신이 결혼당사자처럼 상대를 ‘이런 배우자’하고 맞춤형을 상상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주위 분들을 만나면서 현실의 냉혹함을 발견하게 되어 넋두리를 쏟아내며 서로 나누려 합니다. 현실은 삶의 연장선의 그 변곡점(變曲點)이란 것을 느끼면서 변곡점이 삼라만상(參羅萬像)의 어느 한 형상이 될 텐데 미래에 있을 상(像)이라 어느 형상이 될지를 짐작할 수가 없으니 고민의 모태가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이러한 현실이 아무리 두렵고 슬프거나 아파도 피해갈수 없도록 하는 구속력이 있다는 것을 순간순간 체험하면서도 잊어버리고 자기욕망에 구속되어 있는 현상이 고민이란 그 실체임도 알았습니다. 반대로 살아있는 사람이 누리는 현실이, 아무리 아름답고 풍요롭고 자유와 평화의 가치로 이상향(理想鄕)에 다다라도 예상할 수 없는 미지의 변화를 주관하는 무한한 힘이 행사되는 변곡점이란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사실도 엄연한 나의 현실이며 대다수의 주변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고민 없는 세상을 갈망하는 고민을 하나 더 장만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노인들이 모이는 노인 단체, 시카고 한미상록회가 앞장에 서서 살아온 경륜과 단체의 신뢰를 바탕으로 결혼하지 않은 독신(獨身)들의 짝을 찾아 맺어주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당하는 모든 분들에게 권면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신 젊은이들이여 부모세대를 다 아는 것처럼 속단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부모님, 혹은 삶에서 겪게 될 어떤 갈등이 두려워 결혼을 기피하지 마십시오. 삶에서 빚는 갈등은 극복의 과제이지 기피의 대상이 아닙니다. 주어지는 갈등은 어떤 갈등도 그 갈등을 극복하게 되면 그 속에 있는 희열과 감사를 체험하게 되어 복으로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결혼배후자는 단순한 성적(性的)인 동반자로서가 아니라 삶의 동반자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결혼해서 누리는 일체의 삶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는 막대한 삶의 손실입니다. 부모님들에게 당부합니다. 자녀들의 결혼에 부모님들이 앞에 나서지 마십시오. 자녀들의 선택에 방해가 될 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부로서의 삶의 본을 보이십시오. 현제에 혼자가 되었다면 과거의 행복(추억)을 펼쳐내어 결혼이 좋은 것이란 산 증거가 되어 주셔야 할 것입니다. 정말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불행은 욕망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알면서 욕망을 털어버릴 수 없듯이 삶이 호락호락했다면 이런 불행은 이미 해결 되었을 것입니다. 설사 세대적 견해를 극복하기 힘들 때는 대립의 명분을 충분히 설명해야 합니다. 나는 두 아들을 양육하여 결혼을 시켜 보았습니다. 처음 맏이가 중국계 여자를 배우자로 소개했을 때, 아들에게 하나를 물었습니다. “내가 너희들 결혼을 반대하면 포기하겠냐?”하고 말입니다. 아들놈이 아니랍디다. 그렇다면 허락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알려 주려 온 것이란 뜻이라고 받아들려야 했지만 토를 달지 않고 만나보자고 했습니다. 방법은 우리 집에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습니다. 초청한 그날 저녁은 내가 요리를 했습니다. 주요 반찬에 된장찌개였습니다. 신부 될 아가씨는 불평 없이 그 찌개를 잘 먹어 통과를 했습니다. 그 다음은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초대를 했습니다. 이도 잘 적응 했습니다. 그리고 통과가 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는 선물로 잘 살란 당부를 주었습니다. 설사 상대가 피부색이 달라도 나엔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살았으니까요. 모두 감사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