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베드로의 눈물

1617

 

이영후(TV탤런트/네이퍼빌)

 

엘 그레꼬<El Greco, 1541-1614>는 스페인의  화가이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톨레도성당에 걸려있는<베드로의 눈물>은 그의 신앙고백과 같다. 사실, 화가와 달리2000 여년전, 부활의 사건을 엘 그레꼬처럼 현장검증 해본다는 것은 성서적진리[Gospel Truth]에 도전한다는 괘씸죄로 자칫 고초를 당할 개연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공관복음이 각각 전하고 있는 현장 기록들을 분석해 보면, 결코 짜고 썼거나 의견을 조율해놓은 세상문서가 아니라는것을 우리는 안다.그렇기 때문에 배우로 살아온 본능적인 체질에서 라고나 할까, 이 시대의 잣대로, 이 상황을, 한번 재구성 해보는것은 어떨가? 먼저, <지축이 흔들리고 성막이 찢겨나간 상황> 말하자면 체포,감금,고문,살육의 공포속에서 어쩔줄 몰라했던 제자들의 행방이다. 함께 모여서 무엇을 했었을까? 세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처럼 두려움에 떨려, 살기 위해, 제 각각 구명도생을 위해서 뿔뿔이 흩어졌을까? 아니면 극도의 공포 속에서 무슨 정보라도 없을까 해서, 한 장소에 모여 있었을까? 그때, 허겁 지겁 달려 들어온 마리아. 그녀가 받은 충격은 우리가 상상해 볼만하다. 동 트기 전의 새벽, 공동묘지의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거기에다가 유령 같은 이의 만남, 그리고 살아있을때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소망등,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는 충분 조건을 갖고 있는 마리아의 횡설수설, 상황 판단이 빠른 요한이 제일 먼저 달려 나갔을것이라고 상상 해 본다. 그러나 무덤속을 제일 먼저 들어갔던 이는 누구 였을까? 물위를 걸어 본 경험이 있는 베드로, 생각보다는 행동이 먼저인 그가 첫번째 였을것이다. <구부려 들여다보니>로 기록되어 있는것으로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부활 사건의 현장검증은 이렇게 베드로의 시각에서 부터 시작된다. 어둠속의 무덤안, 베드로의 뒷 모습에서 부터 full shot, 세마포로 zoom in. 베드로의 tight vast, 세마포 tight vast, 베드로 tight vast, zoom in, big Close up까지. Cut out!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 가니라.>이렇게 그의 검증은 끝난다. 그러나 그 이후, 베드로의 행적은 너무나 딴판이다.오히려 찬란하기 까지하다. 십자가를, 그것도 꺼꾸로 메달리기를 원했던 베드로의 놀라운 변신, 그 승리자로서의 결단은, 너무나 확실한 검증으로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첫닭이 울기 전에 세번씩이나 부인했던 자신의 허물, 회오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텅 빈 무덤, 잘 정돈된 세마포를 보는 순간,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십자가와 같은 고통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줄 근원적인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오로지, 단 하나, 믿음 뿐이라는것이다, 믿음이 해결이며, 믿음이 승리이며, 믿음이 바로 부활이라는 사실을 그는 깨닫기 시작 했을 것이다. <기이히 여기며>아마도, 여러번 무덤속을 드려다 본것을 곱씹어 보면서, 베드로는 구레네의 시몬에서  믿음의 반석이 된것이 아니었을까? 철은 용광로 속에서 쇳물이 된다. 베드로의 눈물은 용광로 속에서 녹은 쇳물과 같다. 그 쇳물이 믿음이라는 틀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드로다. 믿으면 하늘나라의 비밀이 저절로 열리게 된다는 저 베드로의 인식이야말로 바로 천국문의 열쇄가 되었다고 나는생각한다. 지금, 우리대한민국은 언제 어디서 무슨 철퇴를 맞게될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접수당하고 있다. 그러나7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고난을 받았던 이북 동포들과 함께 한을 나누며 울부짖는 기도가운데 하늘문은 열리기 시작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베드로의 눈물 속에 보여주셨던 부활사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소망이요,우리들의 삶 속에 엄존하는 실존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쎌라.

<사도들이 저희 말이 허탄한듯이 뵈어 믿지 아니 하니,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 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 가니라.>[누가복음 24장 11~12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