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부드러운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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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존재감이란게 있다. 여기서 존재감(存在感)이란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목을 끌만한 두드러진 품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을 하고 싶다. 어린이의 존재감부터 노인의 존재감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존재감이 있다. 노년에는 조금이라도 타인으로 부터 존중 받지 못함을 알게 되면 분노를 한다. 이런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 존경 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무한하게 큰데, 그렇지 못 함으로 인한 괴리감에 힘들어 하는게 노인들의 본성이다.

노년에는 생활의 만족도(満足度), 심리적 안정감(安靜感), 삶의 행복감(幸福感)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개인의 욕구를 충촉 시키는 하나의 방편이고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는 여가(餘暇)의 활용이 꼭 필요한 하나의 요소로 작용을 한다. 여기서 여가는 휴가(休暇)가 아니다. 노인들의 삶에 의미체계를 부여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가치있는 메커니즘(mechanism)이 있어야 한다. 주변과 사회와의 소통 할 능력을 자신이 찾아야 한다. 모든 능력의 출발은 진취적인 생각과 개방적인 소유자에게서 잘 나타난다. 꾸준한 노력없이 전부터 가지고 있는 자기의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소통으로 이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주변의 작은 문화라도 그것을 가지고 여유로움으로 바꾸어 간다면 그것이 곧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노인은 여가의 지혜로운 활용이 곧 삶의 여유로 연결지어지는게 아닐까.

얼마전 부터는  앵그리 올드(Angry Old)가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은퇴자들이 늘어나니 별별 상황이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노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걸로 봐서는 나이든 사람만 화를 내는 건 아닌 상 싶다.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 스님이 “화는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우는 아이와 같다”라고 하면서 분노의 원인은 자기 안에서 생긴다는 표현을 했다. 이렇다면 분노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자기 존재감이 미약하다 느끼면 어디서든지 그곳을 떠나려 한다. 어느 누구와도 소통을 할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을 땐 더욱 더 분노를 유발 한다. 이 또한  노년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더글러스 파웰(Douglas Powell)은 겸손은 “경험의 선물”이라고 표현을 했다. 노인들은 살아오면서 실망, 실패, 잃어버린 기회, 불운한 순간까지 모든 걸 겪어 온 사람들이다. 좌절도 많이 겪어 왔지만, 그런 것이 쌓여서 지혜로 사용하게 되는 방법을 알게 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노인들은 부드러운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말씀하신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로 표정지어 나타나는 노인들도 많이 있다. 그들의 특징은 다이내믹한 변화 속에서 잘 적응하며 사는 노인들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아침 6시에 기상을 해서 카톡만 4, 50개를 보내고 있는 분이 있다. 물론 받는 분들은 전에 다 알 던 분들이다. 그들이 반겨하거나 말거나 유투브에서 일상의 도움의 되는 것을 골라서 보내고 있다. 이 열정은 누구도 감히 따라잡기 힘든 노력이다. 이 분은 이제 막 80이 넘은 할머니이다. 지금은 지식의 공유가 머리 좋은 자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덕망있는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일하는 태도에 관여를 하지 않고 도우려고 만 한다. 흔히 범하기 쉬운 자기의 체험담이나 무용담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여도 젊은이들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보인다. 이렇게 포용력이 넓은 노인들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서려있다. 불평이 가득한 얼굴과 늙었는데도 아직까지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인들은 모두가 멀리 하고자 한다.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했는데, 노년이 되어도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못 짓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겉으로 웃기가 힘들다면 속으로 라도 웃어 보자.  이렇게라도 하면 행결 얼굴 표정이 부드러워 보일 것 같다. 이런 말이 있다. 마음에 새기자. 한번 웃을 때마다 한번 젊어진다. 일소일소(一笑一少). 이 말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