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김의 영화세상]  젊음, 그 찬란하고 덧없는 것(Youth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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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시카고>

 

12월의 끝자락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이만큼 산 것도  감사하지만,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아쉽고 미련이 남기도 합니다.  삶의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우여곡절에 대한 성찰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꿈결같이 부드럽고 에세이처럼 사색적이며,  풍경화처럼  색채가 살아있는데 웃음과 풍자가 가득합니다.

은퇴한  음악가 ‘프레드’와 그의 친구인  퇴물 영화감독 ‘믹’은 스위스 알프스의 고급 리조트에 왔습니다. 80을 훌쩍 넘긴 두 노인네는 온천욕을 하고 마사지를 받고 산책을 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과 명성을  마음껏 누리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두 친구는, 이제 늙고 기운없는 노인이 된 것을 실감하며 씁쓸해 합니다. 둘은 과거의 영광에 대해 서로 과장해서 얘기를 하다가도, 밤에 잠을 못 잔다거나 소변이 시원치 않게 나온다는 고민을 나누기도 합니다.

믹은  감독으로의  인생을 집대성할 마지막 작품을  기획중 입니다.  참신한 젊은 작가들과 함께 리조트에서 각본을 쓰는 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프레드의 딸 ‘레나’는 아버지의 조수겸 비서입니다. 리조트에서 마사지, 의사 예약, 방문객 접견까지 모든 스케줄을 관리합니다.  프레드는 젊은 시절 연주회 때문에 항상 집을 비웠고, 다른 여자들과의 염문으로 아내를 외롭게 했습니다. 레나는 아버지로 부터 받은 상처가 깊습니다.  믹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의 특사가 프레드를 찾아옵니다. 남편 필립공의 생일에 프레드가 작곡한 “심플 송즈”를 듣고 싶다는 부탁입니다.  프레드는  은퇴를 이유로 단번에 거절합니다.

리조트에 묵는 투숙객들도 개성있고 흥미롭습니다. 젊은 미국인 배우 ‘지미’는 새로 맡은 배역을 연구중입니다. 과거 자신이 연기한 것은 로보트 역할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입니다. 정말 그 인물이 되어 연기하고 싶습니다. 프레드와  얘기를 나누며 거장으로부터  삶에 대해 힌트를 얻으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축구 황제로 칭송받던  ‘디에고 마라도나’는 비게덩어리 몸이 되어 숨도 겨우 쉬면서 풀장을 거닙니다. 미스 유니버스가 리조트에  머물면서 두 노인네가 앉아있는

온천탕에 알몸으로 들어옵니다. 풍만하고 육감적인 여인의 몸을 보면서 늙은 두 친구는  서글프게 감탄할 뿐입니다.

남편이 젊은 여자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떠나자,  레나는 프레드에게 달려와 온갖 원망과 분노를 쏟아냅니다. 자신의 불행을 순전히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탓으로 돌립니다.  프레드는 딸에게 사랑과 미안함을 전하고 위로합니다. 대본 작업이 드디어 끝나고 믹은 흡족합니다.

새 영화의 주연은 평생 그의 작품에 주인공이었던 대배우 ‘브렌다’입니다. 브렌다를  출연시킨다는 조건으로 제작진도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브렌다가 리조트로 찾아옵니다. 그녀는 믹의 영화 대신 텔레비전 시리즈물에 출연한다고 통보합니다. 믹은 펄펄 뜁니다.  브렌다는 믹의 최근 십년간 실적이 신통치 않았음을 상기시킵니다.

이틑날, 믹은 프레드에게 오랜 여행을 떠날 거라고 말하고는 발코니에서 투신합니다.

프레드는 홀로 산책하다 넓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들을 만납니다. 나무 등걸에 앉아서 소떼들은 바라보던 그는 조용히 두손을 들고 심포니를 지휘합니다. 그의 머리속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선율이 퍼져갑니다.

다시 여왕의 특사가 찾아옵니다. 프레드는 “심플 송즈”는 오직 자신의 아내가 소프라노 파트를 맡아야 하는데,  지금 아내는 노래를 부를 수 없어서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레나는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립니다.

결국 아버지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어머니 였습니다.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베니스의 요양원에 홀로 있습니다. 프레드는 몇년만에 요양원의 아내를  찾아갑니다. 지미는 새배역의 분장과 복장을 하고 리조트 식당에 나타납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살아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지미의 얼굴엔  히틀러의 복잡다단한 삶의 표정이 그대로 들어납니다.  진정한 연기의 시작입니다.

프레드는 마침내 여왕과 필립공 앞에서 걸작 “심플 송즈”를 연주합니다.  지휘봉을 든 그의 신호에 맞춰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소프라노 조수미의 심금을 울리는 맑고 고운 노래소리가 연주회장을 가득 채웁니다.  늙은 노장의 주름지고 겸허한 표정과 지휘하는 손동작이 강렬하고도  처연합니다.

눈부신 촬영과 아름다운 음악,  윗트와  웃음이 넘치는 대사, 찬란하고도 쓸쓸한 여운이 오래 남는 수작입니다.

 

(*회요일 연재되는 조이 김의 영화칼럼 크리스마스 연휴 관계로 하루 늦춰 오늘자에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