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미국 송두리째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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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의 상흔은 여전하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무너진‘그라운드제로’ 현장에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형 조형물이 세워졌고 거기에 모든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로이터]
20년 전 그날. 미국 본토를 공격한 전대미문의 테러에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뉴욕 현지에서는 물론 LA에서도 상상을 초월한 테러의 참상에 치를 떨었고, 본보는 이 충격적 뉴스를 사건 직후부터 호외 발행을 통해 알린데 이어 연이은 특집 보도를 통해 역사에 기록했다. (왼쪽부터) 2001년 9월11일 낮 ‘미 최악의 폭파테러’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본보의 첫 호외. 다음날인 12일 본보는 9.11 테러를 총 11면에 달하는 특집으로 다뤘다. 테러가 발생한 그 주 주말인 15일 ‘미국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참상을 재조명하는 특집이 발행됐다. 이어 2개월 후 뉴욕 JFK 공항에서 발생한 민항기 추락사건을 신속 보도한 본보의 호외.

미국이 공격당했다···참혹했던 그날의 참상·영향

2001년 9월11일 미국 경제의 심장부 뉴욕. 구름 한 점 찾을 수 없는 쾌청한 화요일이었다. 갑자기 맨해턴 남단의 세계무역센터(WTC) 북쪽 건물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소속 여객기가 북쪽 건물에 충돌한 시간은 오전 8시46분. 테러범 5명을 포함해 승객과 승무원 92명이 탑승한 보잉 767기였다. 17분 후에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여객기가 WTC 남쪽 건물에 부딪혔다.

시속 600마일의 속도로 날아든 보잉 767기의 위력에 남쪽 건물은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리고 쌍둥이 빌딩 중 남은 한쪽인 북쪽 건물도 검은 연기를 쏟아내며 붕괴했다.

당시 110층 높이의 쌍둥이 빌딩에 입주한 기업과 기관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추산된 인원은 6만 명. 붕괴 현장에선 구조에 나선 소방관과 경찰관을 포함해 2,753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에 2대의 항공기가 추가로 납치됐다. 워싱턴 DC 연방의회 건물을 노렸던 항공기는 기내에서 테러범들에 용감하게 맞선 승객들의 영웅적 활약에 도중 펜실베니아주에 추락했지만, 나머지 1대는 워싱턴 DC 근교 국방부 건물 ‘펜타곤’에 충돌해 184명의 사망자를 냈다. 9.11 테러로 인한 총 희생자수는 2,997명에 달했다.

뉴욕 맨해턴의 상징으로 불렸던 쌍둥이 빌딩 붕괴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시청자들은 미국 영토에서 발생한 동시다발적인 테러에 경악했다.

■테러와의 전쟁

미국은 테러의 배후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카에다를 이끄는 오사마 빈라덴을 지목했다. 그리고 빈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신병인도를 요구했다. 미국의 전쟁 선포 후 두 달만인 같은 해 12월 탈레반은 패퇴하고, 아프간에는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테러와의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미국의 다음 표적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었다. 대량살상무기(WMD)가 존재한다는 정보를 근거로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침공 2주 만에 후세인 정권이 붕괴했다.

미국은 9·11 테러 발생 10년만인 2011년 파키스탄에서 빈라덴을 사살했다. 이후 미국은 아프간과 이라크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20년간 테러와의 전쟁을 치렀고 들어간 돈은 8조 달러에 달한다.

미군에서 7,052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아프간과 이라크 등지에선 30만 명이 전투 중 숨졌다. 민간인 희생자는 36만~38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9.11 테러가 발발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아프간에서 완전 철군했지만 20년 전에 시작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중동지역의 혼란이 이어지는 한 극단주의 세력은 끈질기게 생존할 가능성이 높고, 이들의 칼끝은 여전히 미국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두리째 바뀐 미국

9·11 테러는 글로벌 질서에서의 미국의 위상과 미국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일간 USA투데이가 서포크대와 함께 지난달 1천 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0%가 ‘9·11로 미국인의 삶이 완전히 변했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답은 38%였다.

9·11 이듬해인 2002년에는 삶이 변했다는 응답이 54%, 아니라는 답이 45%로 9%포인트 격차였는데, 2011년엔 17%포인트로, 2021년엔 22%포인트까지 벌어진 것이다.

2001년 15세 이상이었던 응답자 거의 전부가 그날의 기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이 강력했다는 뜻으로, 85%는 9·11이 그들의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고 세 명 중 두 명은 개인의 삶에도 큰 영향이 있었다고 했다.

지난 20년간 미국에 일어난 최악의 사건으로 9·11 테러가 꼽힌 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35%의 응답으로 1위였고, 9·11 테러가 27%로 2위였다.

설문조사 항목에 9·11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몰고 왔는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인 열 명 중 여섯 명이 9·11 테러로 삶이 영원히 변했다고 느낀다는 자체가 당시 충격과 공포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대규모 해군 비행장이 있는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매슈 에르난데스(34)는 USA투데이에 “내가 학교에서 알던 많은 사람이 엄청나게 애국적으로 됐다. 같은 학년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이 군과 관련된 일에 복무하는 것 같고 이는 상당 부분 9·11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9·11 이후 가장 직접적으로 겪게 된 변화는 공항에서다. 액체나 라이터를 들고도 항공기를 탈 수 있던 시절은 지나가 버렸고 길게 늘어선 줄과 엄격한 수속이 일상이 됐다.

추가 테러 위험을 막고자 당국이 빗장을 거는 와중에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던 미국에서 반이민 정서도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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