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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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인간은 동물이면서 다른 동물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이라 칭하기를 싫어 한다.  동물보다는 고귀한 다름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 한다. 여기서 또 다른 말이 생겨난다. 인간이면 다 같은 인간 인줄 아느냐 이다.  즉 사람다워야 사람이다 라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 다움이 뭔가를  바르게 실천하라고 알려 준 사람이 바로 성인(聖人)들이다.  지금의 나이든 사람들이 초등학교 때  배운게 4대 성인이다.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예수를 가르켜서 4대 성인이라 칭한다. 19세기 중엽에 일본 사람이 주장한 것을 그대로 배웠기에 우리는 그리 알고 있는 것이다. 서양으로 가면 또 다른 이름이 추가 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성인들이 한 말에는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꼭 배워야 할 지침서를 진리라고 하자.  인간이 진리를 알고 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면 우리의 삶은 발전 되어 간다.

이 진리를 받아 들이는 이성(理性) 은 인간 만이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 (Homo Sapiens)이라 하는 거다.  이성(sane)이란 참과 거짓, 옳음과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을 식별 할 줄 아는 능력이다. 오래전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이성에 대립되는 다른게 있다고 믿었다. 이성은 나쁨이나, 더러움을 판단해서 바른길로 가게 잡아주는 자율적인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에 인간은 폭넓은 사회적인 관심을 가진 책임있는 존재로 살아 가야 했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지성적이기에  깨달음이나 가르침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알고 있음과 실천의 차이라는게 생겨 난다. 기독교에서 가르침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다. 그런데 그런 분이 인간을 만들었기에 인간에겐 당연히 양심이란게 있게 마련이다.  이 양심 때문에 도덕이란 걸 배우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안다. 그런데 흰것을 검다라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검은 것을 흰것이라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옳음을 실천하는 사람들 틈에서는 낙오자인 동시에 악인(惡人)이 되는 거다.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진리의 정의(正義)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 깨닫고 싶다 ”‘ 하면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함에 따른 결과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윤리가 뭔가를 알고 태어 났다고 봐야 한다.  인간은 옳고 그름은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된다.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도덕과 윤리에 어긋남이 없는 그 어떤 곳으로 가서 살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죽은 후에 그런 곳으로 가기를  갈망 하는게 인간이다.  종교인이 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자는 거다. 이런걸 부르짖고, 가르키는 자들 조차 이를 이행치 못하면서 외치고만 있는 허구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브라함 링컨은 사회적 책임감을 지닌 한 사람의 실천하는 삶이, 백권의 책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라고 했다. 타인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은 일을 쉬운듯이 행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 되어 버린거다. 나 하나의 잘못이 많은 것을 무너트리고 있음을 자각하는 자들이 생겨나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이 너무 많이 생겨 났다. 무섭게 전파 되어가는 ” 나 만 아니면 돼 “ 라는 이상한 풍조가 여기 저기서 들려 오는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달라고, 또는 받겠다고, 산으로 가서 기도를 한다. 자기가 노력해서 얻으려는게 아니고,  어떤 힘있는 대상의 힘에 의하여 기적을 바란다고 볼 수가 있다.  너무나 헛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거짓의 싹이 터서 자라는게 사기 (詐欺) 고,  미신이고, 이단이 되는 거다. 이를 멀리해야 함에도 때로는 배운자나, 가진자들이 그 속으로 흡수되어 들어 간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남이 하는 말을 듣고 깨달아야 할 것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내 였던 미셸 오바마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 저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 란 말을 되새겨 볼 때인듯 하다.   과연 품위는 깨달음(正覺)을 알고 사는 자들 만이 갖게 되는 특권일까?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어느 누구도 품위를 가질 수 있는게 오늘의 현실 임을 알았으면 좋을 것 같다.  결국 깨달음이란 푸른 창공을 나르는 독수리와 같은 모습이라 생각 해 본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자 만이 깨달음을 이해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