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긍휼히 여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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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예수님의 산상 설교 팔복의 기별 가운데 긍휼은 다섯 번째 축복의 말씀입니다. 팔복의 여덟 가지 삶의 가치들이 모두 중요한 것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긍휼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하여 매우 강조된 가치였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신 예수님께서 친히 그의 삶과 가르침을 통하여 동정과 자비로운 마음을 드러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긍휼의 가치를 이처럼 강조 하셨을까요? 왜냐하면 긍휼은 하늘 아버지의 품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누가복음 6:3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마태복음 5장 48절의 말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 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는 말씀의 같은 표현으로 누가는 ‘온전’을 ‘자비’라는 말로 표현하며 하나님의 품성의 온전함이 곧 자비롭고 긍휼을 베푸시는 마음인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팔복의 말씀처럼 긍휼히 여기는 자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요? 이것에 대한 답을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주인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종은 나가서 그에게 백 데나리온 빚 진 동류를 만나 그에게 빚을 갚을 것을 강요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이 그를 잡아다가 말합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이 여김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죄인이라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만한 아무런 가치도 조건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로 사랑을 받을 만한 자로 여겨 주시고 그분의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그분이 먼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긍휼히 여김 받는 자로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한낱 우리의 욕심과 욕망에 눈이 멀어 나 혼자 내 입만 만족하면 되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보잘 것 없는 죄인에 불과한데 우리 주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사 불쌍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신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아무 가치 없는 우리들을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하심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보면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삶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실천하며 살면 어떠한 축복이 있을까요? 그것은 마음을 채우는 보람과 만족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와 동정심을 가지고 긍휼을 베풀 때 그 마음속에는 만족스런 보람과 즐거운 만족이 충만하게 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 줄 때 그 마음속에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칩니다. 보람과 영적 만족감이 충만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긍휼을 베풀고 선을 나타내고 나의 것을 나누었다는 뿌듯함이 마음속에 파도처럼 밀려오지 않습니까! 이것이 긍휼히 여기는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또 다른 축복은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넉넉함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 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우리가 긍휼이 여기는 자가 되어 봉사하는 자의 삶을 살게 될 때에 그 분의 풍성 한대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분의 것이 나의 것이 되는 축복, 그분의 넉넉함이 나의 넉넉함이 되는 축복, 그분의 모든 것이 나의 모든 것이 되는 축복, 그분의 긍휼하심이 나로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는 축복. 이것이 오늘 긍휼히 여기는 자가 받게 될 축복입니다. 이러한 축복 우리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