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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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훈 목사(모자이크교회 담임)

성경은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고전13:5)라고 말한다.‘성내다’라는 말은 헬라어의 ‘파로크쉬네타이’와 관련된 말이다. 이 말은 ‘예민하여 쉽게 분개하고,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분노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언젠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컴퓨터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고생 한적이 있다. 컴퓨터가 계속해서 재대로 작동을 하지 않자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컴퓨터 자판기를 세게 치다가 나중에는 마구 두둘기기도 했다. 그날 내가 준비하던 설교 제목은 ‘성내지 아니하며’ 였다. ‘성내지 아니하며’라는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가 컴퓨터에 화가나서 자판을 마구 두둘겨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는 그런 내 모습에 혼자 웃었다.

마크 코스그로브라는 교수는 미국 테일러 대학교의 교수이며 유명한 심리학자로, “Counseling for Anger”(분노상담)이란 책을 쓰신 분이다. 그분이 도서관에서 ‘분노상담’이란 책을 쓰다가 간식을 먹기위해 도서관의 현관에 있는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다. 그리고는 원하는 과자봉지 버튼을 누르고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과자봉지가 나오다가 기계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호주머니를 뒤저보았지만 동전은 더 이상 없었다. 그분은 자판기를 가볍게 두들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더욱 세계 두들겨 보았지만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그 순간 그분의 마음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분은 성질대로 냅다 발로 자판기를 차버리고 싶었지만, 뒤에서 자판기를 사용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그 순간 그분은 만약 자기가 그 자판기를 발로 차서 파손시킴으로 고발이라도 된다면, 그 다음날 신문에 이렇게 나지 않을까 상상했다.“분노 상담의 대 전문가가 분노를 참지 못해서 공공 도서관의 자판기를 파괴하다!” 이렇게 어떤 일로 마음이 상하거나 실망함으로 화가나는 것은 누구나 가질수 있는 자연적인 감정이고,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경험할수 있는 일이다. 부부간이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일터나 친구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도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일들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상하고 분한 마음이 드는 이런 감정을 긍정적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런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를 짓는 자리까지 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어떤 사람은 겉으로 분노를 드러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분노를 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이 어느 쪽이든지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절대로 선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결국 마음의 분노가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되고, 마귀의 시험거리를 만들고, 실패의 길을 가게 만든다. 영국의 성서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했다.“분노는 언제든지 패배자의 표시이고, 분노할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줄 아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지배할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자신이 패배자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다스리지 못할때, 존경과 영예를 잃고, 우정도 사랑도, 우리에게 주어진 복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며 자기를 다스린다. 성경이 말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29:11) 분노는 선택이다. 분한 마음이 생기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분노의 감정에 이끌려 분한 감정을 표출 하든지, 아니면 그런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든지 그것은 우리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 번 분노를 다스릴 것을 선택한다면 그 다음의 선택은 더욱 쉽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우리의 남은 삶의 여정에 큰 선물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분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이것이 우리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고 새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5) 우리 인생 여정의 최고의 과업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