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랑은 오래 참고

721
이범훈

이범훈 목사(모자이크교회 담임)

인생 여정은 배움의 여정이다. 이런 배움의 여정에서 특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학습자가 되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 자신과 이웃을 복되게 하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는 삶의 탁월한 지혜이고 삶의 위대한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 할 사랑은 어떤 것인가? 성경은 ‘사랑은 오래 참는 것’(고린도전서 13:4)이라고 했다. ‘오래 참는 것’은 나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쉽게 분개하거나 보복하지 않고 오래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 참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잘못으로 인해 쉽게 상처받고 분개하고 원한의 마음을 품고 산다. 마음의 분노는 독과 같아서 우리의 평안과 행복을 빼앗고 건강을 헤치고 실패의 길을 가게 하지만, 우리는 그런 분노를 품고 산다. 바바 하리 다스는 우리의 삶을 통찰하게 하는 이런 시를 썼다. “머리가 둘 달린 백조가 있었다/그래서 그 백조는 머리가 하나인 다른 백조보다 더 빨리 먹을 수 있었다./어느 날 인가/백조의 두머리는 누가 더 빨리 먹을 수 있는지를 놓고/서로 싸우기 시작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했다./한쪽 머리가 독이든 열매를 발견하고는 말했다./‘난 더 이상 너와 함께 살수 없어’/그러자 다른 머리가 말했다./‘안 돼! 먹지 마! 네가 그걸 먹으면 우린 둘 다 죽어./하지만 화가 난 머리는 독 있는 열매를 삼켰다./그렇게 해서 머리 둘 달린 백조는/죽고 말았다.”(류시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니다. 우리는 분노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오래 참는 사랑의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분노가 이해로 바뀌고, 보복의 마음이 축복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뀔 때까지 오래 참고 견뎌야 한다. 이렇게 오래 참는 동안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사랑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배우게 되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삶의 길로 가게 된다. 오래 참는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다.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로마서2:4) 이렇게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까닭에 죄악 된 우리 인생이 죄 용서함을 받고, 심판과 멸망의 자리에서 의로움과 영생의 자리로 옮겨졌다.

한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자동차 파킹 장소를 찾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주차 금지 구역에 자동차를 세워 두고 메모지 한 장을 유리 창에 붙여 두었다.  “경찰관 귀하, 저는 이 주변을 이십 바뀌나 돌았지만 주차할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중요한 약속장소로 가야 하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 직업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저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 사람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자동차 유리에 이런 글이 붙여 있었다. “차주에게, 나는 이 주변을 이십 년 동안이나 돌았습니다. 내가 만약 법대로 주차위반 티켓을 발부하지 않으면 내 직업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 경찰관은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러하오니,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그 경찰관이 교통법규대로 주차위반 티켓을 발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지금 당장 공의로 심판하실 수 있지만, 긍휼과 사랑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해 주셨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에베소서 2:4-5)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오래 참고 긍휼과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이전에 가보지 못한 참된 기쁨과 풍성한 삶의 열매가 있는 새로운 삶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